장미를 위하여 - 김응교
별명이 장미였지
야윈 몸보다 큰 장미 다발을 내게 안기곤 했지
네온사인에 가시 없는 붉은 장미
히메지 장미 클럽, 장미 꽃숭어리 장 마담
거실에 미끈한 비키니 사진을 은근히 자랑했었지
아가씨들 밤일 나간 빈 방에서 내가 자곤 했지
주일 아침, 아가씨들 교회로 데려가려고
다그쳐 깨우는 소리
그렇게 결혼하길 원하더니
어처구니, 잘 생긴 한국 사내와 결혼했는데
첫아기 돌잔치 일 주일 전날
급작스런 그날 밤,
장미꽃 대궁 툭 분질러졌다
관 위에 장미 꽃숭어리 입 벌려
향기 이울 때, 깨달았다
나는 그녀에게 완벽하게 속았다
매일밤 손님 맞이하던 스폰지 넣은 G컵 가슴
매주 찬양대 설 때 절벽으로 내려앉고
없는 사람 돕는다며 가끔 목돈 보내던 그녀
머리핀만치 많은 장미꽃 가시
십이지장에 꽂아 자학했었던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천년의시작
비행기 - 김응교
술집 전전하다가
나이 들어 더 이상 탱탱한 알몸이 아니기에
동네 남자들에게 속살 팔다가
호텔에서 마사지하며 지내다가
담배에 찌든 시꺼먼 간장 덩어리,
괄약근 늘어진 할망구 웃음, 급기야
불심검문에 잡혀, 그저께 한국으로 강제 송환된
그녀의 빈방에서
아내 팬티도 갠 적 없는 내가
가슴에 못만 박힌 여자 팬티를
비행기 접어 상자에 넣을 때,
주민등록상으로 쉰 하고도 넷에게서
국제전화가 왔다
선생님, 스커트나 구두나 침대나 냉장고는
유학생이나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시고요
옷장 위 박스에 제 방을 들락거리던 남자들 옷이 있어요
그건 북한돕기운동 하는 데 보내주세요
아내 팬티도 갠 적 없는 내가
낚시터의 미끼처럼 버려진 여자의 과거를
비행기 접어 하늘 창고에 날린다
# 김응교 시인은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씨앗/통조림>,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이 있다. 1998년 일본 와세다대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 강의하다 귀국했고 현재 숙명여대 리더십 교양교육원 교수로 있다. KBS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수는 입을 다무네 - 기형도 (0) | 2018.10.19 |
---|---|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 너머에 있다 - 임경섭 (0) | 2018.10.19 |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 - 강재남 (0) | 2018.10.18 |
눈물 도둑 - 김연종 (0) | 2018.10.17 |
무사하지 않은 사랑을 꿈꾸며 - 이재섭 (0) | 2018.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