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도둑 - 김연종 눈물 도둑 - 김연종 단 한 번도 꿈꾸지 못한 혁명 같은 은유가 내 눈 속에 흐르지만 눈물 주를 벗 삼아 눈물의 고갈에 대해 말하지 않으리 내 눈물을 훔쳐 한낱 위안으로 삼은 네가 지금쯤 슬픔에 잠겨 펑펑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다녀간 후로 눈이 각박하다 눈썰미도 사라지고 안.. 한줄 詩 2018.10.17
무사하지 않은 사랑을 꿈꾸며 - 이재섭 무사하지 않은 사랑을 꿈꾸며 - 이재섭 진짜 사랑은 무사하지 않은 거란다. 가슴 설레는 '사랑'이라는 그 말이 실은 어떤 분이 지상에 몰래 심으신 위험한 종자 씨란다. 한 번 모질게 싹이 트면 그 자리가 일시에 전복되는 거란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이때껏, 그날을 고대하며 살아왔는지 .. 한줄 詩 2018.10.17
장미가 준 바닥 - 황종권 장미가 준 바닥 - 황종권 바닥이 일제히 각을 세우자, 무릎이 예리하게 빛났다 무릎이 칼끝에 가까워지면 피를 쏟고 싶어 장미를 쥐었다 장미는 꺾이도록 아름다운 계단이었나 관절이 뜨거워질 때마다 가시가 뻗어나갔다 핏발 선 노을이 허기 가득한 비문을 새길 때까지 가시는 끝없이 .. 한줄 詩 2018.10.17
뭉클한 당신의 문 밖 - 이은심 뭉클한 당신의 문 밖 - 이은심 방금막을 내린 연극에서 당신은 분장을 지우고 돌아올 것이다 창밖엔 바람이 불기도 하고 불지 않기도 한다 죽은 듯이 있다가 부리나케 친절해지는 인생은 그래도 가끔 아름다웠다고 주장했던 사람들 그들은 안락한 침대에서 죽었다 하루쯤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을 때 추억 옆에서 나는 위험하게 꽃 핀다 구애의 각도를 출입문 쪽으로 돌려놓으니 한 마디만 더 하면 넘칠 것 같다 입을 열면 쏟아질 것 같다 비 내리는 찻잔들이 어제처럼 모여서 춥고 어디든 걸칠 데를 찾는 상처의 이유들은 끊임이 없다 볼륨 높인 음악이 아랫입술처럼 내려앉는다 반짝이는 것들로부터 당신은 아직 오지 않는다 서러워도 등이 꼿꼿한 의자는 원래부터 죄의식이 없었다 눈물을 끓여낸 쓴 물이 목까지 차오른다 가성의 음성을 바.. 한줄 詩 2018.10.16
거룩한 식사 - 이종형 거룩한 식사 - 이종형 머리칼과 얼굴에 튄 몇 점의 페인트 자국을 미처 닦아내지 못한 광대뼈 도드라진 사내가 식탁 위에 차려진 팔천 원짜리 수육백반과 소주 한 병과 마주 앉아 있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바닥을 몇 번 비빈 사내는 맥주잔에 투명한 한라산소주를 콸콸 따라 가득 채.. 한줄 詩 2018.10.16
어느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오후 - 이명기 어느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오후 - 이명기 공중을 밟고 가는 바람의 저 둥근 발자국들, 그늘처럼 몸 밖의 날들이 있었다 한 그루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어느 후생(後生) 같은 오후, 언제나 어두운 우물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보이곤 했다 오랫동안 내 안의 일렁이는 날들.. 한줄 詩 2018.10.16
금니 삽니다 - 황구하 금니 삽니다 - 황구하 사거리 구두수선집 앞, 누런 글씨로 세워진 간판을 본다 어느 절이었던가 소가죽 고아 만든 갓풀에 금가루 개어 썼다는 금니(金泥)가 문득 생각났는데 금니 필요 없다 말짱 다 헛것인 겨 화장허고 나믄 그거 하나 남아 그것도 이놈 저놈 쌈 난다는디, 시상이나 이거 .. 한줄 詩 2018.10.16
정세훈 시화전 -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정세훈 시화전은 나름 의미가 있다. 노동자 시인으로 시력 30년을 기념해서 시인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이 걸렸다. 시인의 시를 온전히 담기 위한 치열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나름 시인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담긴 작품들이다. 공부방에 걸기 딱 좋을 정도의 소품부터 거의 벽 한 면.. 여덟 通 2018.10.15
발이 부은 가을 저녁 - 허수경 발이 부은 가을 저녁 - 허수경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오래 걸었습니다 저녁을 말아먹고 검어지는 수제비마당에 대야를 내놓고 발을 담급니다 걷다가 아주 많은 발을 보았습니다 말, 양과 돼지 오리와 토끼의 발 자전거 자동차의 발도 빌딩이라는 황무지를 걷다가 김밥을 넘기며 .. 한줄 詩 2018.10.15
길을 걸었다, 아주 많이 - 박헌호 길을 걸었다, 아주 많이 - 박헌호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나는 사랑을 가문비나무에 맺힌 고통이라고 부르리라 책상 서랍에는 그토록 많은 30센티 대나무자가 쌓여 있었으니 그어진 눈금 위를 걷고 있는 내가 아직도 보인다 아니, 이건 무슨 물소리인가, 돌아보면 짙푸른 길들이 일제히 일.. 한줄 詩 2018.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