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희망, 잡으면 녹는다 - 박지웅 눈과 희망, 잡으면 녹는다 - 박지웅 낮은 곳만 찾아 배어드는 겨울바람 짐이 뜸한 날 더욱 기승 부리는 건 추위들이다 그는 짐이 뜸할 때마다 짜놓은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관절에 붙어 달아오르는 붉은 신호 따라 대설경보 내린 하늘 이리저리 펄럭인다 짐꾼대기소에서 졸다 일어나 스토.. 한줄 詩 2018.12.20
장례희망 - 김명기 장례희망 - 김명기 마흔 아홉, 지나간 열정과 가까워진 허무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 아주 어렸을 땐 이런 나이가 있는지도 몰랐지 죽은 아버지도 지금 나보다 어렸으니까 노선도 모르는 생에 무작정 올라타 여기까지 올 거란 생각도 없었으니까 풍경과 인물이 뒤섞인 꿈속을 오래 거닌 탓.. 한줄 詩 2018.12.20
술통 - 장승욱 얼마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처음엔 제목을 숯통으로 알고 뽑았다가 자세히 보니 술통이다. 조금 두꺼운 책이라 무슨 철학서인가 했는데 술에 얽힌 산문집이다. 약력을 보니 저자 장승욱은 우리말에 관한 다수의 책을 냈단다. 술통은 단숨에 읽게 만들 만큼 흥미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6년이고 저자는 2012년 1월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1961년 출생이니 51년을 살고 세상을 떴다. 다수의 우리말 관련서뿐 아니라 시집도 유고 시집 포함 두 권이다. 아! 이 사람 시인이었구나. 중간에 정체를 파악한 나는 시인이 쓴 산문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술에 관한 예찬이자 담론이라 할까. 어쨌든 요즘은 내가 술을 거의 끊다시피 했으나 예전에 술이.. 네줄 冊 2018.12.20
쓸쓸한 가위 - 박정원 쓸쓸한 가위 - 박정원 한파를 견디고 있는 나무에게 전지가위를 댄다 잘리는 나뭇가지의 외마디소리에 왔던 햇볕도 오그라든다 부드러운 나무는 휘어지며 잘리고 거친 나무는 부러지면서 잘린다 내 몸속의 곁가지나 잔가지를 누가 잘랐나 다시 와서 손을 봐주면 안될까 곤고한 몸을 지탱하느라 애쓴 다리는 말고 지쳔명을 넘기느라 희끗희끗해진 머리칼도 말고 엊그저께 뽑은 사랑니 같은 것 가시 돋친 혀뿌리 꽃을 위장한 눈물뿌리 싹독 도려낼 순 없을까 가시나무는 가시째 잘리고 꽃부터 피는 나무는 꽃잎째로 잘리는데 왜 성급한 내 몸속의 가시나 꽃은 잘라내지 못했을까 누굴까 나를 제대로 솎아내지 못한 가위는 *시집, 고드름, 시평사 그리운 별 - 박정원 어금니가 흔들리자 김치 한 잎도 고무줄이네 삼십육년 전에 지은 정부종합청사처.. 한줄 詩 2018.12.19
귀소 - 김나영 귀소 - 김나영 서쪽을 향해 앉아있는 저 노인들 짧게 깎은 머리, 주름의 방향, 우묵한 눈매가 서로 닮아 있다, 약속이나 한듯이 붉은 꽃무덤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저들의 모습이 흑백사진 같다, 낡음낡음한 정물화 같다 어느 세월이 붙잡을 건가 저 쇠락의 속도를 한때 주름잡던 시절이 실.. 한줄 詩 2018.12.19
검붉은 삼베 위에 좁쌀이 뜰 때 - 박성준 검붉은 삼베 위에 좁쌀이 뜰 때 - 박성준 그 와중에도 나는 몸을 혐오했다 귀신에게 체온을 주는 일이란 나쁜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의 표정인 것만 같아 함부로 밀실을 말하기가 싫다 잊어라 부디 못 잊을 몸, 밉다 날아라, 해도 마당이 있으면 춤이나 추고 가고 배경이 있으면 목소리 대.. 한줄 詩 2018.12.19
길 밖에서 - 이문재 길 밖에서 - 이문재 네가 길이라면 나는 길 밖이다 헝겊 같은 바람 치렁거리고 마음은 한켠으로 불려다닌다 부드럽다고 중얼대며 길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푸른 잎새들이 있다 햇살이 비치는 헝겊에 붙어, 말라가는 기억들 가벼워라 너는 한때 날 가로수라고 말했었다, 길가 가로수 그래,.. 한줄 詩 2018.12.19
아주 조금의 감정 - 이현호 아주 조금의 감정 - 이현호 어쩐지 누굴 잊고 있는 감정, 너의 안부보다 생면부지 외국 가수의 비명횡사가 더 선명한 감정 인간이라는 말은 악기에 더 어울리는 감정, 켤 줄 모르는 악기의 울음을 타인의 손끝으로 듣는 감정 나는 왜 오랫동안 인간을 상상할까, 내가 인간이면서도 길거리.. 한줄 詩 2018.12.18
영월 - 심재휘 영월 - 심재휘 새벽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할 때 갈 데 없는 혼잣말처럼 영월은 몸이 추웠다 생각해보면 그 언젠가도 동강을 따라 가파른 기슭의 성한 곳 없는 곡조를 긁으며 기차가 지나갔던 것인데 강 건너 철궤를 따라 멀어지는 이별이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남몰래 들어와 혼자 읽어.. 한줄 詩 2018.12.18
청사포 - 최백호 청사포 - 최백호 해운대 지나서 꽃 피는 동백섬 해운대를 지나서 달맞이 고개에서 바다로 무너지는 청사포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는 없고 발 아래 포구에는 파도만 부딪히어 퍼렇게 퍼렇게 멍이 드는데 해운대 지나서 바다와 구름 언덕 해운대를 지나서 달맞이 고개에서 청사포를 내려 보면 여인아 귓가에 간지럽던 너의 속사임 아직도 물결 위에 찰랑이는데 찰랑거리는데 순정의 첫 키스 열정의 그날 밤 수줍던 너의 모습 이제는 바람에 흔적마저 찾지 못한 청사포 사랑한다고 나만 사랑한다고 철 없던 그 맹세를 내 진정 믿었던가 목 메어 울고 가는 기적 소리여 # 최백호 노래는 언제나 가사를 유심히 새기면서 듣는다. 그가 작사 작곡을 한 모든 노래가 서정적이서 그렇다. 1950 대평동 가사는 그가 태어난 해를 기념한 것이기도 .. 두줄 音 201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