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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낭비 - 김재진

존재의 낭비 - 김재진 너무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말라. 모든 소리엔 고요함이 있으니 들리는 것보다 더 깊은 안 들리는 것에 귀 기울이라. 너무 많이 기다리던 것은 너무 많이 욕망하는 것이니 원하는 것을 줄여 원하지 않던 것을 피하게 하라. 너무 많이 애태우던 것은 너무 많이 상처 나는 것이니 머무를 수 있다면 상처 위에서 스승을 찾게 하라. 삶에서 내가 배운 것 중 하나는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니 중요하지 않더라도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소중하다. *시집, 산다고 애쓰는 사람에게, 수오서재 절정 - 김재진 그것이 삶인 줄 몰랐네. 아프지 않기 위해 서로를 아프게 하던 멀리 있던 이별을 눈앞으로 끌어와 기어코 경험하고 마는 그것이 후회인 줄 몰랐네. 모든 날들..

한줄 詩 2019.03.22

그 집 마당에 핀 꽃 - 김두안

그 집 마당에 핀 꽃 - 김두안 그 집 마당에 핀 매화꽃을 보고 와 나는 몇 번 더 그 뒷모습도 훔쳐보고 와 열병 같은 꿈을 앓기도 하고 자꾸 머릿속에 또박또박 돋아나는, 그 꽃 한 몇 백 년 어디쯤에 두고 온 한 사람, 그 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낮이고 밤이고 내 정수리에 반점처럼 돋아나 나는 양지에 앉아 이마 깊이 뿌리내린 그 꽃, 찬찬히 들여다보다 바람이라도 스치면 아무렴 나 혼자 이곳까지 왔겠나 싶지 그래도 이곳이 그곳이라면 그 집 마당에 핀 그 꽃, 몇 번 봤으면 됐지 *시집, 달의 아가미, 민음사 나는 왜 여기 서 있는가 - 김두안 왜가리 한 발로 중심을 잡고 서 있다 붕어가 뛰쳐나와 얼어붙은 하천 얼음 구덩이 물결이 쌓인다 바람이 살얼음판을 깐다 다른 한쪽 발에 제 삶 전부를 천천히 옮겨 볼..

한줄 詩 2019.03.21

이 한 곳에 서서 - 정의태

이 한 곳에 서서 - 정의태 한 천년을 지나온 듯 그 맘속에 가만히 들어서고 싶다 아침햇살이 바다 이 편에 닿기 전 그 적요한 틈에서 비켜난 한 움큼 해맑은 눈빛으로 그 맘속에 닿고 그 눈길에 적셔지고 싶다 해가 지든 달이 뜨든 이 한 곳에 서서 그 마음이 지나는 자리마다 달빛처럼 섰고 싶다 달빛의 설레임 마냥 비치고 싶다 푸르른 녹음 어디서나 새가 울고 강 언덕 가차운 들녘 꽃들이 흐드러진 길 따라 세상 어디에 놓여 지든 그 마음 곁일 수만 있다면 *시집, 세상의 땀구멍, 도서출판 전망 그 산다화 - 정의태 사랑을 사랑이라 이름 짓지 않은 꽃이 겨울을 붙들고 있다 바람을, 배고플 겨를 없는 혹한을 비벼 끄기 위하여 담배연기 뿜듯 허공을 당기는 입김들 - 사람들의 발길은 그 눈길만큼 착하지 못해 아픈 이..

한줄 詩 2019.03.21

그 이별에 대한 변명 - 박소원

그 이별에 대한 변명 - 박소원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고 있는 너를 둔 채, 나는 간신히 집으로 돌가갔다 난청이 심한 오른쪽 귀를 기울이며 우리는 제각각 힘주는 곳으로 멀어졌다 도시의 저녁은 아파트 유리창에 붉은 손금을 문지르며 얼마나 속살거리는지 어둠도 힘닿는 곳으로 뿌리를 내렸다 (손톱만큼이라도 가고 싶어야 끌려도 가는 거) 우두둑, 가지가 꺾이는 소리 나무 밑에서 뜯어 본 편지 속에서 나는 겨우 너의 비명소리를 듣고 있다 언 땅속으로 잔뿌리 꾹꾹 내리는 겨울나무처럼 남은 물기들 뿌리로 내리며 두 발이 얼어붙었다 나무와 나는, 서로에게 기대어 밤이 새도록 눈을 맞았다 *시집, 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문학의전당 투석 - 박소원 때맞추어 시체처럼 굳어지면 나는 몸속의 구석구석 낯설고 험한 길을..

한줄 詩 201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