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십년 후, 옛집을 지나며 - 배창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신작롯가
오늘도 버스는 그 자리에 선다
물길따라 지어놓은 작은 방둑 아래
바람은 하늘길 따라 휭 지나가고
어디선가 날아와 쌓인 꿀밤나무 마른잎 아래
따스운 초겨울 햇살만 부서져 남는 곳
거기 내 옛집 초가지붕 눈부시게 있었더니
지금은 낯선 돌멩이만 구를 뿐 손바닥만한 집터만이
어쩌다 남은 수숫대와 억새를 세워
몇대에 걸쳐 여길 거쳐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 같은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란 오직
흐르는 세월에 꿰어 희미하게 빛나는
그립고 아픈 날들의 기억이고 편린인 것을,
다시 십년 후, 옛집을 지나며
나는 무엇으로 이 자리를 메우고 또 떠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시집,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창작과비평
흔들림에 대한 아주 작은 생각 - 배창환
추수 끝난 강둑에 무리지어
다 끝나가는 한 생을 마저 살려고
마구 흔들어대는 저 으악새는
어떻게 내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지 않고
내 곁을 지나친단 말인가
성주 가천 닷새장 파장에 부는 소슬바람도
대가천 식당 할매가 말아내논 돼지국밥도
정류장 둘레에 퍼질러앉아
금방 밭에서 뽑아온 무 배추 몇단 놓고
국수 말아먹는 아낙의 등 굽은 가계(家計)도
어찌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 지나치리
그 모습에서 감동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 웃음에서 가버린 세월을 되감아오기도 하고
하다 못해 연민의 눈길이라도 욕심껏 퍼붓고 갈 일이니
세상에 저 홀로 흔들리는 것 무엇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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