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심야 식당 - 박소란

마루안 2019. 3. 23. 21:18



심야 식당 -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








전기장판 - 박소란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추위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부연 입김이 터져나오는 꿈이라도
따뜻하다 이 방은 참 따뜻한 곳이다 알 수 있다


아버지도 나도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뜻하다 따로 또 같이
믿을 수 있다


종일 떨다 돌아온 날에는 온도조절기에 빨갛게 들어온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세상 끝 옥탑에 보일러가 도는 기분


외출할 땐 꼭 끄고 나가셔야 해요 꼭이요 당부할 때마다 아버지는
알았다 좀처럼 대답하지 않고


피를 마르게 한다는데
온수매트를 사야 하나 얼마짜리를 사야 하나 이따금 고민도 하지만


지금은 버릴 수 없다 취한 바람이 창을 때리는 초저녁
금빛 장판 위에 쓰러지듯 누운 아버지는 어느덧 새근새근 잠이 들고


피를 마르게 한다는데


일부러 장판을 켜지 않은 날에는
무거운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게 된다 죽은 척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들처럼,
아버지도 나도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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