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연에 관하여 - 박수서

마루안 2016. 8. 1. 01:50



인연에 관하여 - 박수서



그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슨 자기력처럼 오른손이 끌려나갔다
왼손과 오른손의 결합, 맥을 집듯 조심스럽다
속살과 속살이 부둥켜 흔들려야 하지만,
등껍질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물갈퀴질을 하듯 손이 흔들렸다
계속해서 딸국질을 하는 어린 손이 흐드러지며
뚝 떨어지는 순간, 수십 수백 개의 손들이
길을 잃고 숲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가 놀라서 눈물을 찔끔 흘렸을 만큼
먹이를 나르는 개미떼처럼 찾아온 손들이
그와 나를 거미줄처럼 엉켜 놓았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가시처럼 따갑게 넝쿨을 쳤고


밤송이만한 꽃들이 피어났다.



*시집, 공포백작, 책나무








강물을 읽다 - 박수서



한때는 자잘 자잘 모여 있던
작은 물방울이었을 것이네
세상의 폭우를 견디며 스스로 살을 찌우고
家系(가계)를 이루고 이웃을 만들고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세상으로 가는
물길을 만들었네.
물이 마르지 않는 한 강은
이 땅의 젖줄이 되어 젖을 물리는 어머니처럼
노을 아래 밥 짓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촌락의 즐거운 풍경을 안고
세상의 아픈 상처를 쓸어내리네.
삶이란 강물이 서로의 어깨를 기대어 한 몸으로 흐르듯
누군가에게 거뜬히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평화를 아는 것이니,
살며 세상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저 강물처럼 얻어맞으면서도 뻔한 끝을 갈 수 있는 것
모래알 하나 품지 않고 비우고 다시 비우고 갈 수 있는 것
앞서지 않고 길을 내주어도 공평하게 갈 수 있는 것
그것을,
나는 水中 깊이 뛰어들어 튼튼한 아가미를 열고
강물을 읽고, 뱉고, 하며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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