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이미자 해부론, 그리고 아줌마

마루안 2019. 12. 11. 21:41

 

 

내가 살던 마을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전기가 들어왔다.

전화기도 마을회관에 있는 점방에 있었고 전화가 오면 동네 스피커에서 아무개 씨 전화 왔다고 알리면 뛰어가서 받곤 했다.

우리집에 전화 걸려온 경우는 없었다.

 

개구쟁이들이 집에 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개울로 돌아 다녔다.

프로 레슬링이 중계 되면 온 동네 아이들이 텔레비젼 있는 집으로 모여 들었다.

 

아이들 사이에 재밌는 소식이 돌기도 했다.

조미료 미원을 뱀가루로 만들었다고 우리는 굳게 믿었다.

가수 이미자가 죽으면 일본에서 그녀의 목을 가져간다는 말도 있었다.

 

동백아가씨를 멋드러지게 부르던 누나도 이 말을 믿었다.

어릴 적 소문은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

추억이 때론 믿음을 더 탄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최초로 본 성기

 

여자 성기

 

어릴 적 동네 할머니가 있었다. 내 친구의 할머니다.

울퉁불퉁한데다 고양이 이마빡 만한 우리집 마당에 비해 친구네는 마당은 평평하고 넓었다. 

마당에서 구슬치기나 자치기를 하며 놀았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마룻가에 걸쳐 앉아 오줌을 눴다.

할머니는 홑치마만 입고 속옷을 입지 않았다.

우리는 할머니가 오줌을 누면 그 앞에 앉아서 소변이 찔끔찔금 나오는 성기를 구경했다.

 

가끔 친구가 할머니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 넣기도 했다.

할머니는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리고 손자가 하도록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 성기 주변에는 듬성듬성 회색 털이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 성기를 보면서 할머니 보지 봐라, 할머니 보지 봐라 하면서 올레꼴레리 했다.

가끔 친구 어머니에게 들켜 야단을 맞기도 했다.

 

남지 성기

 

우리집인었는지 친구 집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운 여름이었나보다. 마루에서 동네 아저씨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동네 짓궂은 아저씨가 잠자는 사람의 허리띠를 풀더니 앞단추를 풀었다.

 

까만 털이 난 성기가 드러난 모습을 옆에서 구경했다.

동네 아저씨가 고추를 손가락으로 툭 튕기자 자던 사람이 눈을 뜨더니 바지를 추스리면서 옆으로 돌아 눕는다.

옆에 있던 아저씨 몇이 껄껄 웃었다.

 

어른들 고추에는 머리카락이 있구나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아줌마에 대한 명상

 

 

요구르트 아줌마, 화장품 아줌마, 보험 아줌마를 삼대 아줌마라 생각한다.

화장품 아줌마는 아모레 아줌마와 주단학 아줌마로 나눴다.

가정 경제에 큰 보탬이 되던 아줌마들이었다.

 

생활력이 강한 반면 버스나 지하철 빈 자리를 악착같이 사수하는 극성 아줌마이기도 하다. 

아줌마가 되면 얼굴이 두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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