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휘파람새 울고 동백꽃 지니 - 안태현

휘파람새 울고 동백꽃 지니 - 안태현 모처럼 홀로 되어 묵은 때 씻겠다고 뭍에서 섬으로 건너오니 휘파람새가 운다 가파른 비탈에 뒹구는 동백꽃 숭어리들 섬에서는 나를 오래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싸구려 옷을 좋아하고 허술한 민박집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이 내 생의 농도 너무 묽은 게 거슬리고 너무 끈적이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술집에서 바다에서 점집에서 나사 한 개가 풀린 것처럼 낭비가 필요한 내 감정들 꽃 질 때 우는 새도 있는데 너무 우는 일을 잊고 살았다는 것인가 등 돌리고 가서는 밥 한 공기처럼 웃는 일이 많았다는 것인가 나를 태운 이 섬이 둥둥 떠서 망망대해로 흘러가면 홀로 우는 휘파람새가 되어도 좋겠다 파도에 밀리고 밀리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이 되어 끝내 시처럼 살아내도 좋..

한줄 詩 2022.03.26

고사목 1 - 박소원

고사목 1 - 박소원 글렀어, 다시 잎이 자라기에는 습관성 절망들 나이테 속으로 골똘히 스며든다 가지마다 귀버섯이 피고 이끼가 푸르다 글렀어, 다시 잎이 자라기에는,,,,. 무른 목질에 절망들 평화적으로 새겨질 때 바람도 멀리서 온도를 낮추며 온다 겨울을 향해 고독하게 서 있으면 병 없이도 순간 죽을 것 같다 신도시 아파트단지 잘 가꾸어진 화단에서 죽어가는 병은 나에게로만 스며든다 여러 종의 여러 그루의 나무 중에서 병이 나에게로만 스며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람 앞에서 부러지고 건조되는 그 속에 든 평화에 나는 이미 길들여졌다 달콤한 병증에 중독된 나는 순순히 병을 받아드리는 자세를 고수한다 오래 묵은 병의 의지로 나는 선 채로 죽어간다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이 의지는 가지 끝에서 죽음의 끝에서 ..

한줄 詩 2022.03.25

고비사막의 별 - 오광석

고비사막의 별 - 오광석 컴컴한 새벽 도심 모퉁이에 기대 앉으면 밤새 비추는 인공의 불들 스스로 빛나는 별을 보고파 고비사막으로 데려다줄 택시를 부르는데 눈을 감으면 떠나는 사막의 새벽 여행 양의 소리를 들을 때 울리는 사막민족의 고함 두건을 두른 채 비단길을 따라 사막을 건너는 카라반이 되어 전설의 카라호토를 찾는데 지평선이 보이는 사막의 밤 넉넉하고 포근한 게르 뚫린 천장으로 빛나는 별들을 보다가 길을 따라 들어오는 신의 숨결을 받고 잠드는데 눈을 뜨면 날카롭게 각을 세운 빌딩들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 흔들리는 도시인들 속에 오지 않는 택시 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사막의 별 *시집/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걷는사람 낙엽처럼 - 오광석 가끔 한 가지 색으로만 보일 때가 있어 노란색으로 보이는 날 홀로 주..

한줄 詩 202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