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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1 - 한명희

불면 1 - 한명희 -난간 난간 위에 서 있던 어젯밤 길가에 습관처럼 서 있던 당신은 택시 기사와 드잡이한다 갑자기 사라진 어느 집을 두고 잠 못 들던 어젯밤과 무관하게 먹은 것도 없이 배가 부르다던 누구와도 무관하게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바람은 바람끼리 서로의 몸을 비틀고 매만져 장송곡 같은 저음의 노래를 만들고 흙빛이 된 하늘과 핏줄을 드러낸 나무는 난간보다 낮은 집에 팔을 뻗고 회초리를 든다 허물어진 집을 다시 짓거나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밤을 달리는 사람들이 당신만은 아니었으므로 당신을 지나쳐 온 집들과 앞서간 집들은 여전히 속도를 무시하고 눈을 보면 불쑥불쑥 솟아 있는 빌딩처럼 이 층으로 가는 난간에 기대 있다 뒤처져 마음만 앞서 오르는 나는 캄캄한 오밤중, 밤새 대궐 같은 집을 혼자 짓다 부수고..

한줄 詩 2022.04.25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오래전이다. 80년대 후반쯤일까. 유시민이 그리 유명하지 않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김진경 선생의 와 함께 이 책은 너무나 인상 깊은 책이었다. 내 의식을 바꾼 책이라고 해도 되겠다. 물론 그때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도 몰랐다. 조선일보도 열심히 읽던 시절이다. 어쨌든 개정판이라고는 해도 두 번 읽는 책이 극히 드문데 요즘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공부가 되었다. 여전히 내 호기심은 9살 아이 같아서 꼬리를 물고 나오는 신간에서 눈길을 뗄 수 없다. 한 번 읽은 책을 모셔두더라도 다시 꺼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은 처음 읽은 것처럼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교과서나 매스컴에서 본 세상이 기본은 아니다. 유시민은 세계 곳곳의 역사를 뒤집어 본 시각으로 독자들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한다. 특히..

네줄 冊 2022.04.25

시적 소장품 전시회

시적 소장품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전시회다. 특별한 목적 없이 전시장 나들이는 이렇게 이색적인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된다. 시립미술관은 상설전이 열리는 터라 무작정 들러도 헛걸음 할 일은 없다. 1층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창밖의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맛도 괜찮다. 신기한 건 계절마다 사람들 옷차림 달리지는 것뿐 아니라 걸음걸이도 바뀐다는 것이다. 시적 소장품전은 단체전이다. 시와 미술이 다른 예술 장르지만 상호 보완적인 예술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고매한 감상평을 남길 것까지야 있겠는가. 골목길에 늘어선 화분들 꽃 구경하듯 전시장 천천히 돌고 나서 머리가 개운해지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여덟 通 2022.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