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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한 일 - 장시우

일생 한 일 - 장시우 개구리가 알을 슬고 간 무논 영문도 모르고 알에서 깬 올챙이는 고여 있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일이 전부인 양 대책 없이 꼬리를 흔든다 웅덩이를 살아가는 그들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해 풀쩍 뛰어넘지 못한다 봄볕에 말라 버린 무논이 그들의 선택지는 아니었는데 날개를 달아 준 것도 아니기에 어쩌다 놓인 말라 가는 논에서 몸부림치다 말라 가는 일이 태어나서 한 일의 전부 뜨거운 햇볕 아래 벌거벗은 몸으로 몸부림치는 일이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끝과 시작에 절망한 일이 전부 그리하여 어느 날 흔적이 소리 없이 지워지는 일 벗어나려 꼬리를 파닥이는 일 그것이 일생 한 일 *시집/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봄날이 있다 - 장시우 녹슨 드럼통이 키우는 개구리알 언제부터였을까 버려진..

한줄 詩 2022.04.29

발바닥의 생 - 이현조

발바닥의 생 - 이현조 가운데가 움푹하다 하늘을 닮았다 서쪽 끝에서 시작된 걸음마는 고단한 보행을 지나 지금은 천기를 읽을 나이 으르렁대는 천둥 뚫고 각질 더덕한 걸음으로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중이다 시끌벅적 물장구 치는 아이들 돌부리에 치이며 졸졸대는 시냇물 물 등에 얹힌 시간의 주름들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언제나 맨발이었다 몸을 지탱하며 앞만 보던 엄지발가락이 한풀 꺾여 하늘 향해 있다 *시집/ 늦은 꽃/ 삶창 늦은 꽃 - 이현조 올해는 가물어서 꽃이 안 피나 봐 아내의 속을 태우더니 여름 장마보다 긴 가을장마에 일제히 꽃망울 터트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안 아픈 손가락 있다 똑같이 깨물어도 더 아픈 손가락 있다 아내는 셋째에게만 애정 표현 안 한다고 셋째는 자식도 아니라고 어머니..

한줄 詩 2022.04.28

접히는 부분이 헐거운 골목 - 이성배

접히는 부분이 헐거운 골목 - 이성배 폐지를 줍던 노인이 치킨집 앞에서 상자 밑바닥의 테이프를 뜯자 골목이 헐렁헐렁해진다. 골목의 벽들은 갈라지고 기울어 바람의 마을을 재개발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느 집이든 대문이나 현관 신발장에 노끈 뭉치나 테이프가 있는 것은 느닷없이 접히는 부분이 찢어지거나 밑이 빠지는 생활을 여미는 데 요긴하기 때문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주름진 몸이 수월하다는 듯 이 골목 사람들의 몸도 접히는 부분이 많다.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이 골목에서는 다 한 짐 거리 노끈으로 꽉 묶으면 그만 허리 굽은 노인이 모서리에 비가 샌 흔적이 있는 빈집을 질질 끌고 가는 사이 뒤쪽이 유리 테이프로 꼼꼼하게 여며진 달이 뜨고 있었다. *시집/ 이 골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고두미 꽃의 가계(家系)..

한줄 詩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