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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 김승종

반달 - 김승종 태평동 여인숙 골목 요양원으로 아내 따라 그는 장인 뵈러 간다 푸른 하늘 계수나무 아래에서 돛대 없이 난발 장인은 늙어 가고 삿대 없이 단발 아내는 어려 가는데 누가 토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그는 알 수 없지 눈썹 사이 주름 같은 그 길로 다시 이른 자리 해병 이병처럼 각지게 머리 깎여 미용사 출신 원장 옆에서 한 번 웃다가 엎드리고 막무가내로 끼니 외면한다 그가 앉히려다 식욕 같은 힘에 물러서고 아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눈 뜨지 않는다 누구에게 분노하는 건가 혹 자신에겐가 알 수 없다 그는 알 수 없지 태평동 붉은 창문 닫힌 여인숙 골목 고개 숙이고 그는 아내 따라가 눈 감고 분노하는 장인 뵈어야 한다 어제인지 내일인지 푸른 하늘 계수나무 아래에서 서쪽 나라로 갔던 장모가 절구를 찧..

한줄 詩 2022.04.27

구름의 사주 - 윤향기

구름의 사주 - 윤향기 빈 들녘에 연기가 자욱하다. 짚 타는 연기가 매캐한 외로움이 되어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자 한다. 까마득한 하늘로 우르르 몰려가 새털구름을 훔쳐보거나 여우비에게 접근했다가 따귀를 맞고 홀로 지상으로 추락할 때도, 존재의 심연에 곤두박질하여 통곡의 볼륨을 올릴 때도 다 지났다. 저녁노을에 머리를 물들이면서부터는 구름의 눈물 닦아 주는 역할을 도맡고 레퀴엠(진혼곡) 듣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구름의 손바닥을 펴 본다. 구름 모자를 쓴 물고기 한 마리 천상의 춤을 멈추고 이제는 결가부좌다. 옴! *시집/ 순록 썰매를 탄 북극 여행자/ 천년의시작 벼락을 맞다 - 윤향기 TV가 말했다. 꽃을 오래 보려면 물속에 설탕을 조금 넣으라고 어버이날 꽃바구니가 배달되..

한줄 詩 2022.04.27

귀신도 살고 사람도 살고 - 이현승

귀신도 살고 사람도 살고 - 이현승 스승이 없었다면 오늘날 네가 있었겠느냐 하지만 제자가 없다면 스승이 있겠습니까. 가르치는 일이 배우는 일이기도 하고 교학상장이란 말도 있지만 배우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가르치려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가. 본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 예의는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은 궁금한 건 많은데 알려주는 사람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공부는 지식만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서 학교가 반드시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라서 커피숍도 있고, 화장품 가게도 있는 학교에는 학교가 없고, 제자가 없고, 스승이 없고, 가끔 친구는 있는데 교장선생님 말씀과 주례사의 미덕은 올바름에 있지 않고 그건 눈높이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길이의 문제이다. 짧아야 ..

한줄 詩 202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