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반달 - 김승종

마루안 2022. 4. 27. 22:03

 

 

반달 - 김승종


태평동 여인숙 골목 요양원으로
아내 따라 그는 장인 뵈러 간다
푸른 하늘 계수나무 아래에서
돛대 없이 난발 장인은 늙어 가고
삿대 없이 단발 아내는 어려 가는데
누가 토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그는 알 수 없지
눈썹 사이 주름 같은 그 길로 다시 이른 자리
해병 이병처럼 각지게 머리 깎여
미용사 출신 원장 옆에서 한 번 웃다가
엎드리고 막무가내로 끼니 외면한다
그가 앉히려다 식욕 같은 힘에 물러서고
아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눈 뜨지 않는다
누구에게 분노하는 건가 혹 자신에겐가
알 수 없다 그는 알 수 없지
태평동 붉은 창문 닫힌 여인숙 골목
고개 숙이고 그는 아내 따라가
눈 감고 분노하는 장인 뵈어야 한다
어제인지 내일인지 푸른 하늘 계수나무 아래에서
서쪽 나라로 갔던 장모가 절구를 찧으며 노래한다
장인은 삿대도 없이 젊어 가고
그와 아내는 돛대도 없이 늙어 간다

 

 

*시집/ 푸른 피 새는 심장/ 파란출판

 

 

 

 

 

 

호박 - 김승종

 

 

꽃이 눈에 들어오는군 이제 늙은 건가

붉은 정지신호 대기 중 차 안

뻔한 말 왜 하나 마누라도 중얼거렸지

 

한 주 지나 다시 그 네거리

며칠 전에 한 친구가 죽었다

당뇨로 눈멀어 가며 용달차 끌고

잘 알아주지 않아도 짬짬이 시 쓰던 시인

 

은사 묘소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한 말

...인생이 호박 같아 초년은 싱싱하고 맛있고 중년은 다 자랐으나 맛이 없고 노년은 쭈글쭈글하지만 그래도 맛은 있다고 내 노모가 그러더군...

 

그가 자신에게 쓴 마지막 시,

... 목숨 애써 구걸치 않고 ... 흐름 하나로 방울 하나로 순간 매듭짓는 삶, 빗소리 ... 밤을 지키는 내 지하방 시절 희망의 소리 ... 그 눈동자면 되지 않겠는가 ...

 

신호 여전히 붉고

봄꽃 밀어낸 신록이 눈에 들어서네

 

 

*... 목숨 애써 구걸치 않고 ... 흐름 하나로 방울 하나로 순간 매듭짓는 삶, 빗소리 ... 밤을 지키는 내 지하방 시절 희망의 소리 ... 그 눈동자면 되지 않겠는가 ... 구준회, <빗소리>, 순수문학 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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