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한 일 - 장시우
개구리가 알을 슬고 간 무논
영문도 모르고 알에서 깬 올챙이는
고여 있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일이 전부인 양
대책 없이 꼬리를 흔든다
웅덩이를 살아가는 그들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해
풀쩍 뛰어넘지 못한다
봄볕에 말라 버린 무논이
그들의 선택지는 아니었는데
날개를 달아 준 것도 아니기에
어쩌다 놓인
말라 가는 논에서 몸부림치다 말라 가는 일이
태어나서 한 일의 전부
뜨거운 햇볕 아래
벌거벗은 몸으로 몸부림치는 일이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끝과 시작에 절망한 일이 전부
그리하여 어느 날
흔적이 소리 없이 지워지는 일
벗어나려 꼬리를 파닥이는 일
그것이 일생 한 일
*시집/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봄날이 있다 - 장시우
녹슨 드럼통이 키우는 개구리알
언제부터였을까
버려진 것이 잊힌 것을 키우기 시작한 때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물소리는
거친 바람 소리에 지워진다
대숲에선 바람이 바람을 문지른다
높게 힘차게 나는 매는 무엇을 본 걸까
개 짖는 소리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은 우는 법을 모른다
허물어지는 담벼락
누군가 떠난 집이 정지된 시간을 되돌리는 법을 배운다
무너지는 집
어떤 죽음은 드러나지 않고 숨겨지는 법
나는 그를 모른다
그가 나를 알지 못하듯
떠도는 이야기는 새롭게 그를 빚는다 객관적으로
속 채울 알맹이를 채우지 못해
이 허수아비는 없었던 일로,
오늘도 잠재우지 못한 바람이 문을 연다
라디오는 들어 본 적 없는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막 해도 되나
이런, 대숲 바람 소리가 문 앞까지 따라왔네
들려줄 이야기가 아직 남은 듯
고양이 울음이 날쌘 봄날이 있다
*시인의 말
흐르거나 고이는 시간에 머물며
세상이 흘리는 소리를 주우며 먼 꿈을 걸었다
이 걸음이 닿는 곳이
나에게 향하는 통로라는 것을
나의 바깥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지나온 발자국이 세상에 없는 노래가 되고
잘 익은 그림자로 날아오를 수 있기를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여름으로 - 박찬호 (0) | 2022.04.30 |
---|---|
봄밤 - 김정미 (0) | 2022.04.29 |
발바닥의 생 - 이현조 (0) | 2022.04.28 |
접히는 부분이 헐거운 골목 - 이성배 (0) | 2022.04.27 |
반달 - 김승종 (0) | 2022.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