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일생 한 일 - 장시우

마루안 2022. 4. 29. 22:26

 

 

일생 한 일 - 장시우

 

 

개구리가 알을 슬고 간 무논

영문도 모르고 알에서 깬 올챙이는

고여 있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일이 전부인 양

대책 없이 꼬리를 흔든다

 

웅덩이를 살아가는 그들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해

풀쩍 뛰어넘지 못한다

봄볕에 말라 버린 무논이

그들의 선택지는 아니었는데

날개를 달아 준 것도 아니기에

 

어쩌다 놓인

말라 가는 논에서 몸부림치다 말라 가는 일이

태어나서 한 일의 전부

뜨거운 햇볕 아래

벌거벗은 몸으로 몸부림치는 일이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끝과 시작에 절망한 일이 전부

 

그리하여 어느 날

흔적이 소리 없이 지워지는 일

벗어나려 꼬리를 파닥이는 일

그것이 일생 한 일

 

 

*시집/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봄날이 있다 - 장시우

 

 

녹슨 드럼통이 키우는 개구리알

언제부터였을까

버려진 것이 잊힌 것을 키우기 시작한 때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물소리는

거친 바람 소리에 지워진다

대숲에선 바람이 바람을 문지른다

높게 힘차게 나는 매는 무엇을 본 걸까

개 짖는 소리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은 우는 법을 모른다

허물어지는 담벼락

누군가 떠난 집이 정지된 시간을 되돌리는 법을 배운다

무너지는 집

어떤 죽음은 드러나지 않고 숨겨지는 법

나는 그를 모른다

그가 나를 알지 못하듯

떠도는 이야기는 새롭게 그를 빚는다 객관적으로

속 채울 알맹이를 채우지 못해

이 허수아비는 없었던 일로,

오늘도 잠재우지 못한 바람이 문을 연다

라디오는 들어 본 적 없는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막 해도 되나

이런, 대숲 바람 소리가 문 앞까지 따라왔네

들려줄 이야기가 아직 남은 듯

 

고양이 울음이 날쌘 봄날이 있다

 

 

 

 

*시인의 말

흐르거나 고이는 시간에 머물며
세상이 흘리는 소리를 주우며 먼 꿈을 걸었다
이 걸음이 닿는 곳이
나에게 향하는 통로라는 것을
나의 바깥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지나온 발자국이 세상에 없는 노래가 되고
잘 익은 그림자로 날아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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