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발바닥의 생 - 이현조

마루안 2022. 4. 28. 22:09

 

 

발바닥의 생 - 이현조

 

 

가운데가 움푹하다

하늘을 닮았다

 

서쪽 끝에서 시작된 걸음마는

고단한 보행을 지나

지금은 천기를 읽을 나이

 

으르렁대는 천둥 뚫고

각질 더덕한 걸음으로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중이다

 

시끌벅적 물장구 치는 아이들

돌부리에 치이며 졸졸대는 시냇물

물 등에 얹힌 시간의 주름들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언제나

맨발이었다

몸을 지탱하며 앞만 보던 엄지발가락이

한풀 꺾여 하늘 향해 있다

 

 

*시집/ 늦은 꽃/ 삶창

 

 

 

 

 

 

늦은 꽃 - 이현조

 

 

올해는 가물어서 꽃이 안 피나 봐

아내의 속을 태우더니

여름 장마보다 긴 가을장마에

일제히 꽃망울 터트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안 아픈 손가락 있다

똑같이 깨물어도 더 아픈 손가락 있다

 

아내는 셋째에게만 애정 표현 안 한다고

셋째는 자식도 아니라고 어머니에게 불평하지만

나는 안다

셋째인 내가 더 아픈 손가락인 걸

 

번듯한 직장도 없이 중년 넘어

가정 꾸리고 겨우 앞가림하고 사니

행여나 말이 씨가 돼 금이 갈까

말보다 먼저 눈언저리가 글썽이는

살얼음판 같은 마음이다

 

어미 잎 다 태우고 아내 꽃까지 다 시들게 한

나는 져야 할 때 피어난 상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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