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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것들의 조그마한 항구 - 배한봉

푸른 것들의 조그마한 항구 - 배한봉 옥상에 상자 텃밭을 만들었다. 밑거름을 넣고 상추며 들깨 모종을 사다 심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물을 준 것 뿐인데 어느 새 잎이 손바닥 만해졌다. 한 잎씩 채소를 거둬들이는데 푸릇푸릇 콧노래가 실실 새 나왔다. 부자가 이런 것이라면, 삿된 생각 한 점 들지 않고 그저 옥상에 동동 떠다니는 실없는 웃음을 데려와 웃거름으로 얹어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재산을 불리는 일이라면 나는 엉뚱한 곳을 오래 기웃거린 것이다. 아하, 웃음이라는 배의 조그마한 항구 금은보화 싣고 출렁이는 볼록한 종이가방에서 푸른빛 환하게 흘러나오는 시간과 싱긋싱긋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 내 이마에 걸리는 초여름 건들바람이 수확한 상추, 깻잎 쌈밥만큼 달달했다. *시집/ 육탁/ 여우난골 꽃 심는 사람 - ..

한줄 詩 2022.05.26

끝에서 첫 번째 - 박은영

끝에서 첫 번째 - 박은영 세상의 쓴맛은 한밤중 더듬어 찾은 젖꼭지로부터다 젖을 떼기 위해 발라 놓은 마이신을 맛본 뒤 일찍이 우는 법을 터득하고 손가락을 빨았다 허기의 힘으로 마루 끝을 벗어나 극을 향해 신발코를 찧어 대며 대문을 나서니 딴 세상이었다 손끝으로 담배를 쥐고 피우는 패거리들과 용두사미가 되어 몰려다닌 시장, 귀퉁이에서 꼬리지느러미를 칼날로 내리치는 여자가 엄마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나는 세상을 끝장내고 싶었다 용의 꼬리로 사느니 뱀의 머리가 되리라 연필심을 깎으며 코피를 쏟았다 허공의 멱을 따는 칼끝과 가난한 꽁무니를 따라 걷다 보면 소주, 변리, 씀바귀, 이별,,,,, 끝에서 첫 번째 골목이 나오곤 했지만 나는 마이신보다 쓴맛은 찾지 못했다 죽을 만큼 쓰디쓴 그 끄트머리에서 꽃은 피고,..

한줄 詩 2022.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