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공부 - 문신 감나무 잎에 빗줄기 들이치는 것 지켜보다가 낡은 서가에서 책 꺼내 오는 일을 잊었다 빗소리 차근차근한 저녁에 공부하는 일은 애당초 틀려먹은 일 차라리 행인처럼 낯설게 두리번거리는 저녁을 공부하기로 한다 저녁은 본문 사이에 낀 인용문처럼 다소는 어색하게 굴기로 작정한 모양으로 스멀거리고 이마를 들면 꼭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길목에 저녁이 걸려 있다 이런 저녁이면 어른들은 술동무를 찾아 끄덕끄덕 빗줄기를 헤집어대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발목까지 젖어드는 저녁에 저녁을 공부하는 일은 저 감나무 앞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문장을 캄캄하게 옮겨 적는 일 그런 뒤 비 그친 감나무 잎 그늘에 낡은 의자를 내다 놓고 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캄캄한 문장을 팔팔 끓는 목청으로 읊어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