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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은 나이테 - 배임호

녹슬은 나이테 - 배임호 오른쪽 새끼손가락 마디가 굵어졌다 오늘 보니 왼쪽 새끼손가락도 그렇다 무릎도 예전과 달라 조금만 먼 길 걷노라면 삐걱 소리 내고 그만 걸으라 빨간불이 켜진다 노화 증상이라고 아프지 않으면 그냥 놔두라고 이제 연골도 아껴 쓰란다 드디어 때가 왔나 보다 이런저런 나이테가 생겨 녹슨 부속품 속도제한 호루라기 소리 들린다 교통경찰관이 아니라 건강경찰관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시집/ 우리는 다정히 무르익어 가겠지/ 꿈공장플러스 어디쯤일까 내 나이는 - 배임호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나 보다 난데없이 사진 찍어 곳곳에 올린다 나이를 먹으면 산책을 좋아하나 보다 눈비가 와도 걷는다 나이를 먹으면 시 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남들이 안 알아줘도 쓴다 내 나이는 어디쯤일까 봄날 온기만 맨날 맨날 가..

한줄 詩 2022.09.21

벼랑 끝 - 강시현

벼랑 끝 - 강시현 벼랑을 나는 새를 보았네 암벽에 걸린 목탁 소리 백척간두 진일보 아메리카 인디언이 몰살당한 계곡의 창공을 나는 새 거대한 날개의 양력으로 우주의 피안으로 가려는 디스커버리 검은 독수리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우리는 본디 벼랑의 날개에 집을 짓고 벼랑의 몸통에다 가정을 꾸리고 마지막엔 벼랑 끝에 올라가 스스로 눈먼 새가 되어 한 번의 비행으로 천지간을 건너는 디스커버리 미스터리 벼랑 멀리 아득한 쪽빛 바다 심해의 시간 건져 올리는 파도의 그물 한 걸음 더 내딛어 볼까 백척간두 진일보 디스커버리 우리의 더운 밥주발에는 상냥한 웃음으로 부드러운 손길로 미스터리 벼랑 끝으로 초대하는 로렐라이의 요정들이 요리되어 있었네 그래도 한 입만 더 백척간두 진일보 디스커버리 미스..

한줄 詩 2022.09.20

고독과의 화해 - 류시화

고독과의 화해 - 류시화 이따금 적막 속에서 문 두드리는 기척이 난다 밖에 아무도 오지 않은 걸 알면서도 우리는 문을 열러 나간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고독이 문 두드리는 것인지도 자기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문 열 구실을 만든 것인지도 우리가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수오서재 접촉 결핍 - 류시화 만약 자신이 죽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당신은 허기를 느낄 것이다 뱃속 허기가 아니라 피부의 허기를 당신의 피부는 접촉을 원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가벼운 포옹, 어루만짐, 우연한 스침도 봄바람마저 당신의 얼굴을 간지럽힐 수 없다 다가가 손을 내밀지만 뼛속까지 투명한 혼이 되어 누구도 그 손 잡을 수 ..

한줄 詩 2022.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