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좋은 게 좋은 거라서 - 이명선

마루안 2022. 9. 14. 22:20

 

 

좋은 게 좋은 거라서 - 이명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것을 찾아다닌다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별거 아닌 일에 별개의 일이 되기도 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구실이 될 것 같고 내게 휘둘리다 보면 나는 잡혀 온 방향으로 흘러 거울은 표정이 없고 더 살필 것이 없어 초조해지고 오늘의 내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빚 받으러 온 손님처럼 어림없을 것 같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서 나도 모르는 나의 죄까지 수긍하게 된다

 

외탁의 나는 엄마의 허물보다 더 큰 거울을 뒤집어쓰고 있어 우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울 수 있는 세상에서 오늘을 실컷 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다가 넉살 좋게 앉아 정도껏 살자는 말과 부대끼려는 마음 사이를 오가며 내게 척지고 싶지 않아 엄마의 거울을 뒤로 돌려놓았다

 

 

*시집/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 걷는사람

 

 

 

 

 

 

자율 배식 - 이명선


쏟아져 나오는 자율은 율법이 없습니다
공원에 서 있는 줄과 품이 헐렁해진 사람들은 최초의 입에 대한 연장입니다

멈추면 사라질 사람들이 무빙워크처럼 걷고 있습니다

대역 없는 무대라서 내려갈 수 없습니다
중얼거리던 한 사람이 사라져도 막간에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내색도 없이
눈여겨볼 시간도 없이

사라진 방향에서 웅성거린다 해도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사라진 사람의 체취가 두리번거려도 새삼스럽지 않은 일입니다

공원이 한철이라면 밀려드는 나도 한철입니다
돌아서면 금방 엔딩으로 흩어질 우리지만 아직은 공원의 구석입니다

쌓일 때마다 차가워지는 일인용 식기처럼
끼니마다 왜 일용할 양식에는 온기가 없을까요

쏟아져 나오는 자율은 율법이 없습니다
정오를 향해 걸어오던 맨 뒷사람처럼 식어 버린 건 내가 아닌지

막간을 이용해 쉬고 싶지만

되돌아오는 무빙워크는 다시 태우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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