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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잔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 하상만

여전히 그 잔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 하상만 왜 어떤 사람은 백 년을 살고 어떤 사람은 삼십 년을 못 사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함부로 살아도 다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조심해서 살아도 사고가 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하느님은 먼저 데려간다는데 그런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어떤 사람은 몇 방울의 물방울도 미끌어지는가 바다를 헤엄쳐 건넜던 사람인데도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무너진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죽음 앞에서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기도가 소용없다 지은 죄도 없는데 고통스럽게 죽는 것은 모르는 죄가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군중의 살해자들은 왜 천년을 사는 걸까 아무런 고통도 없어 보인다 왜 어떤 사람은 떠나고 나서야 가슴에 남을까 일부러 찾아간 적도 없는데 미..

한줄 詩 2022.09.19

눈물 속에는 - 김재덕

눈물 속에는 - 김재덕 글쎄, 젖지 않는 눈 있을 리 없지만 유난히 슬픈 눈은 있다 어젯밤 내린 눈이 그랬다 습설(濕雪)이라더군 작부 속눈썹처럼 떨어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내려 앉혔다 세상이 야단이다 어둠을 지우며 내리는 모습 누군가를 부여안고 내리는 듯 보인다 하늘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전설이나 기억 같은 그런 것들 아닌가 창틀에 내려앉은 한 녀석 그렁그렁 녹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눈물 왈칵 쏟는다 잠깐 마주보다 주르르 어둠 속으로 떨어져 간 눈물 나를 아는 이 아닐까 언젠가 마주 잡은 손 놓고 떠난 이 멀리 갔다 오래 걸려 돌아온 그 사람 아닐까 바람으로 구름으로 떠돌다 슬픔으로 뚝뚝 듣는 그 사람 지나는 길에 겨우 들러 얼굴 한 번 보고 떠나는 눈물 같은 그 사람이면 어쩌나 젖은 슬픔들 또 울..

한줄 詩 2022.09.18

내 인생의 모든 계절 - 박노해

내 인생의 모든 계절 - 박노해 봄은 볼 게 많아서 봄 보이지 않는 것을 미리 보는 봄 여름은 열 게 많아서 여름 안팎으로 시원히 문을 여는 여름 가을은 갈 게 많아서 가을 씨앗 하나만 품고 다 가시라는 가을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 벌거벗은 힘으로 근본을 키우는 겨울 그러니 내 인생의 모든 계절이 좋았다 내 인생의 힘든 날들이 다 희망이었다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회갑(回甲)에 - 박노해 60갑자 생의 한 순환을 완주한 나이 회갑(回甲)에, 첫마음의 등불을 들고 내 살아온 날을 비춰본다 스무 살에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썼다 저를 쉽게 죽지 말게 하시고 고문대 위에서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배신하지 않게 하시고 가난과 고난과 비난 가운데 꿋꿋이 나의 길을 가게 하시고 내 생의 최후의 마침표로 ..

한줄 詩 2022.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