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건너 간다 - 이인휘

마루안 2021. 2. 18. 22:06

 

 

 

읽을 책은 언젠가는 읽게 되는가. 드물지만 그렇다. 3년 전부터 읽겠다고 찜해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집콕을 해야만 했던 설날 연휴 덕분이다. 이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맘 먹고 이인휘 소설을 연이어 읽었다. 소설을 잘 안 읽기에 이것도 드문 일이다.

 

워낙 파란만장한 날들을 제압하며 살아왔기 때문인가. 웬만한 이야기는 다 시시하다. 이인휘 소설 다섯 권을 호떡 포개듯 책상 모서리에 쌓아 놓고 보니 읽기 전부터 배가 불렀다. <건너 간다>.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 <노동자의 이름으로>, <폐허를 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온 신작 <부론강>이다.

 

폐허를 보다는 경어체 소설이라 몇 페이지 읽다가 일찌감치 접었다. 나는 희안하게도 경어체 문장을 읽지 못한다. 참으며 읽는다 해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인휘 소설은 미사여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네 권 중에 어떤 책으로 후기를 쓸까 잠시 생각했다. 압축한 건너 간다와 부론강 중에 건너 간다로 정한다. 작가는 감물처럼 담뱃진이 밴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소설을 썼겠지만 독자는 이렇게 가볍게 생각한다. 그래도 하나라도 남겨야만 작가에 대한 예의이자 내 책읽기의 존중이다.

 

소설 건너 간다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약간의 MSG가 들어갔겠으나 박해운은 호떡 공장에서 일한다. 어머니는 무당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가난을 벗어나질 못한다. 노동 운동에 뛰어 든다.

 

소설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6월 항쟁과 촛불 혁명까지 아우른다. 큰 줄기는 박해운이지만 하태산이라는 민중 가수와 함께 끌고 간다. 소설 시작도 하태산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격동의 세월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함께 노동 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소환해 씻김굿을 하듯 한 사람씩 회상한다. 이인휘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들이 살아낸 신산한 삶에 저절로 경외감이 든다.

 

가수 정태춘과 시인 박남준을 모델로 한 등장 인물들 또한 흥미롭다. 한참 후에 출발했지만 나도 소설처럼 그들과 함께 한 시절을 건너 간다. 죽지 않고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