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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사람들 - 정택진

서울 토박이들도 서울 도심에 있는 동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행정동명은 그런대로 알고 있어도 법정동명은 이런 동네도 있었나 할 정도로 아리송한 동들이 많다. 수시로 서울 도심을 걷는 편인데 걷다 보면 듣도 보도 못한 동 이름이 꽤 된다. 북촌 근처에 있는 팔판동, 소격동, 체부동, 을지로 부근의 산림동, 입정동, 예관동, 서울역에서 가까운 서계동, 문배동 등이다. 용산구에 속한 동자동도 마찬가지로 서울역 맞은 편에 있으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동자동은 종로 3가와 함께 예전에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다. 서울역과 남대문 시장이 가까워서 나그네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에 좋은 위치다. 성매매 단속으로 윤락업소가 떠난 자리에 노동자들의 값싼 숙소로 이용되었다. 현재 동자동은 서울의 ..

네줄 冊 2021.03.26

플라스틱 - 조성순

플라스틱 - 조성순 환타스틱하게 온갖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도구 너무 친숙하여 공기나 물과 같이 되었지. 가볍고 깨지지 않아 이곳 생활을 마치고 은하계로 떠날 때 필수 지참품으로 갖고 가고픈 것 지천으로 흔하여 귀하지 않게 된 것 박을 길러 여물 때까지 기다리거나 불을 때서 옹기를 제작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어느 순간 너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물을 담는 용기로는 제격 둥둥 뜨는 데는 그야말로 플라스틱은 환타스틱 어린 코끼리는 거친 풀잎보다 부드러운 플라스틱을 좋아하지. 고래 배 속에도 들어가고 스스로 진화하여 바닷가 바위에도 껌딱지 모양 붙어 생물인 체도 한다. 거북손 미역 파래와도 영역 다툼을 한다. 금 간 다리도 붙여 주고 상처 입은 내 영혼에도 와서 벌어진 틈을 메워 주어라. ..

한줄 詩 2021.03.26

살아남은 죄 - 이산하

살아남은 죄 - 이산하 ​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세상이 폭발 직전일 때 키 큰 한 젊은 노동자가 광화문 광장에서 '살인마 전두환을 처단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DJ, YS를 비롯한 재야인사들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죽을 줄 알았던 노동자가 '기어이' 소생해버리자 그들은 더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다. 박종철의 관에 또 하나의 관을 쌓아 연쇄폭발시킬 큰 호재가 사라져 내심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노동자는 살아난 것이 죄여서 30년이 지난 아직도 우울증을 앓으며 자기 몸의 불을 꺼준 사람들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있다. *시집/ 악의 평범성/ 창비 운동화 한 짝 - 이산하 반쯤 창문이 열린 신촌 노고산 '이한열기념관' 유품 전시실 원래대로 복원된 바스러진 흰색 타이거 운동화 한 짝 여전히 맨 ..

한줄 詩 202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