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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들의 파란만장 - 이기영

한때, 우리들의 파란만장 - 이기영 창밖에는 잎 하나도 달지 않은 나무 한 그루 나무는 가장 추운 방식으로 눈보라와 마주하지 허기를 반죽하는 손목이 시리고 봄을 향해 부푸는 파일들을 딸깍, 딸깍, 하나씩 열어 볼 거야 그때 2월과 7월 날아가면서 떨어뜨린 새의 깃털보다 가벼이 떠나 버린 그녀와 그녀를 잠깐 떠올릴 거야 지금까지 어쩌다 12월까지 말 한마디 없이 그녀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계속해서 불면에 시달리는 밤들을 목 조르며 견디지 않겠어 달은 이미 다 부풀어 올랐고 이제 그만 모든 기다림을 지워야겠어 나는,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걷는사람 난간 - 이기영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은 그곳의 계절을 몰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보라를 위로하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

한줄 詩 2021.03.28

징한 것 - 김보일

징한 것 - 김보일 나에게 커피는 '달다'와 '쓰다'밖에 없다 아는 커피의 이름이라고는 아메리카노 하나 수많은 와인의 종류도 내게는 그저 감당하기 힘든 외국어일뿐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는 자동차가 그랬다 소나타, 그랜저, 프라이드... 굴러가고 멀미나는 것들은 모두 그냥 '차'였다 젊어 과부가 되고 장가도 가지 않은 두 아들을 잃은 할머니에게 아리고, 저미고, 울멍울멍한 것들은 모두 '징한 것'이었다 만질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시집/ 살구나무 빵집/ 문학과행동 봄비1 - 김보일 분홍 꽃도, 펄럭이는 치마와 도둑고양이와 이팝나무도, 빨간 자동차와 전봇대와 낡은 처마도, 술에 취한 친구의 구겨진 구두와 할머니의 리어카와 개밥그릇도 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살구나무 빵집 - 김보일..

한줄 詩 2021.03.28

꽃들의 경련 - 김윤배

꽃들의 경련 - 김윤배 산수유가 노랗게 치정의 말들을 버리고 진달래가 욕정을 못 이겨 질펀하게 누웠다면 꽃들의 경련을 본 것이다 꽃들은 치정과 욕정 사이에 길게는 열흘간의 생애를 던진다 꽃잎 한 장에 달그림자를 그리고 꽃잎 한 장에 비탄을 그리고 뛰어내리는 그곳이 대지거나 강물이거나 낙화의 순간은 숨 막히는 적막이어서 그걸 보았다면 진실에 가깝다 그곳은 어둠의 숲이거나 소신의 꽃불이다 대리석 바닥에 새겨진 명문은 숨겨졌던 연서였다 꽃잎에 새겨져야 거미줄 위로 파경을 옮길 수 있다 한 생애, 꽃잎 뛰어내리는 순간 *시집/ 언약, 아름다웠다/ 현대시학사 반생 - 김윤배 원망과 냉소로 반생을 가시밭에 두었습니다 원망과 냉소는 목련꽃 짧은 생애에서 크고 깊습니다 가지를 옮겨 앉는 새들이 종일 눈길 주던 목련꽃은..

한줄 詩 2021.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