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섬진강이 궁금하다 - 이운진

마루안 2021. 4. 1. 21:30

 

 

섬진강이 궁금하다 - 이운진


섬진강에 가서 묻고 싶다
너의 하루는 어디까지인지 얼마나 긴지
너도 뒤돌아보면 멈추고 싶은 시절이 있는지
섬진강에 묻고 싶다
하늘에 닿지 못한 구름처럼
사랑에 닿지 못한 나처럼
너도 닿을 데가 없어서 흐르고만 있는 건지
먼 훗날 손목을 움켜 쥘 굽이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네가 지나온 시간의 간절함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왼쪽 손목을 누르는 통증과
낡은 책과 씹어 삼킨 밥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물살이 출렁 기우는 동안
너의 하루도 먼지가 되는지
나만큼 통곡하는지
꽃 피고 꽃 지는 자명한 봄날
섬진강이 궁금하다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문학의전당

 

 

 

 

 

 

봄날 - 이운진


누군가 내 마음 터뜨려
간밤에 떨어져 내린 꽃잎처럼
가슴에 화르르 멍이 들면
봄길을 가다가도
목련나무 가는 허리를 붙잡고, 목련나무처럼
한숨 두어 장 떨구어내 보지만
꿈보다는 봄이 긴 서른 즈음에
몹시 앓을 듯한 예감이 드는 날이면
단내 나는 가슴을
나는 또 봄 속에 묻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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