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에 잠들다 - 우남정 꽃이 들판을 온통 봄으로 물들이고 간 뒤 먼 산 뻐꾸기 울음 아슴아슴 들려온다 아직도 갈대숲에는 빈 대궁들이 서걱거린다 꽃과 씨앗 다 떠나보내고, 그들은 왜 머리채 휘어잡는 바람과 맞서 긴 겨울을 건너왔을까 취한 아비들이 정거장에서 막차를 기다리듯 휘청거리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넘어질 듯 일어서고 있는가 쭈그리고 앉아 그 어둑한 밑동을 들여다본다 젖은 발가락 끝에 송곳니처럼 솟은 두어 뼘의 어린 초록이 보인다 저 어린것들이 제 어미를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일까 낮과 밤을 넘나들며 초록이 초록이 번진다 무엇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저 해묵은 손짓은 눈물 번득이는 칼날 가슴 언저리까지 차올라 차라리 그 초록에 찔려 죽고 싶다는 뜻일까 그예 한 세대를 넘겨주는 것일까 가녀린 쭉정이들의 장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