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날아간 후 - 박주하
저 나무 겨드랑이에서
다투며 피었던 꽃들
모두 날아간 뒤
나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나
어깨가 휘도록 무성했던
잎 지고 난 뒤
이리로 오라던
간절한 손짓 내려놓고
나무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재잘거리던 씨앗들
박수를 치며 웃던 잎사귀들
다 떠나보낸 뒤
비우고 비운 마음속에는
또 무엇이 들어오나
말하지 않아도 굳은 다짐이 있었나
아무도 모르게 번진 약속들이 있었나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자
누군가는 지구의 끝이라 말하고
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새는
그것을 시작이라 말한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걷는사람
오월의 사람에게 - 박주하
-노무현
못다 한 말 품고
한 번만 다녀가세요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꼭 한 번만 다녀가세요
할 말이 많아서 오는 동안 홀연 잊었다면
그냥 눈발이 이마를 적시듯 오세요
강물이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기에
바다로 가는 길목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이란 희망을 붙잡고
좀 더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좀 더 멀리 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투박하고 깊은 미소
당신의 뜨거운 심장을 놓치고 한없이 울었으니
오월의 사람이여
그리운 이름이여
손톱만 한 흔적으로 한 번만 다녀가세요
꽃이 피는 봄날이 아니어도
꿈속으로
꿈속의 흉터라도 되어서
# 박주하 시인은 경남 합천 출생으로 1996년 <불교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항생제를 먹은 오후>, <숨은 연못>,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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