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소한 자유 - 이송우

마루안 2021. 8. 12. 19:21

 

 

사소한 자유 - 이송우

 

 

눈발 옆으로 날리는 비로봉에서

땀에 젖은 안경은 불투명 얼음 조각이 된다

 

동여맨 얼굴 틈을 기어이 뚫는 눈썹까지

허연 바람에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렵다

 

두터운 방한 장갑 속 손가락마저 얼리는

소백 칼바람 앞에 버프를 내리고

말할 용기가 없다

 

볼 수 있다

걸을 수 있다

이 사소한 자유가 얼마나 큰 것인가

 

말할 수 있다 아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공기처럼 가벼운 이 자유가 얼마나 컸던 것인가

 

 

*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실천문학사

 

 

 

 

 

 

옐로우 콤플렉스- 이송우


아니오, 나는 모릅니다

오빠 대신 여순 부역자로 총살당한
스무 살 여인의 노래, 구례 산수유를

산수유는 유채꽃을 닮았고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어제 내린 춘삼월 폭설에
만복대 하얀 턱수염을 보았습니다
봄꽃 만발한 서시천에서
구례 의병들과 여순 민초들
울음을 들었나 봅니다

상춘객 오가는 산수유 마을에서
서둘러 당신을 떠나보냈습니다
개나리 떼 지어 피었다고 아이가 감탄했을 때
당신이 산수유나 유채꽃이 아니라
개나리로 불렸으면 바랐습니다

유채꽃은 산수유를 닮았고
나는 노란 꽃들을 결코 알지 못하겠습니다

 

 

 

# 이송우 시인은 1971년 서울 출생으로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 졸업 및 박사를 수료했다. 2018년 계간 <시작>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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