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역전 - 김영언

역전 - 김영언 배고픔이 가장 큰 추억이었던 시절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지못해 먹던 것들이 있다 미처 봄이 다시 오기도 전에 보리쌀을 채웠던 뒤주 바닥이 드러나면 자물쇠 채워진 아랫방 고구마 섬을 넘석거리고 뒤꼍 감자 구덩이 속에 짧은 팔을 길게 넣으며 일 나간 부모 몰래 끼니를 뒤져내던 유년이 있었다 풍요가 병이 된 현대의 빈곤 속에서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 빈곤을 강요하는 아내가 반어적으로 차려내고 있는 풍요로운 식탁에서 소화불량의 추억을 마지못해 되씹고 있는 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식구들을 검진하고 있는 고구마와 감자는 구미 좌르르 흘러넘치는 흰 쌀밥 대신 반전 없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집/ 나이테의 무게/ 도서출판 b 나이테의 무게 - 김영언 어느 겨울 산등성이 비탈에서 ..

한줄 詩 2022.08.16

보이스 캐처 - 조셉 터로우

내 목소리가 대기업의 영업에 이용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책은 아마존, 애플, 구글 등에서 내 목소리 정보를 가지고 다양한 마케팅에 이용되고 있는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 나는 스마트폰 시대에도 비교적 아날로그로 살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이 아날로그 정서가 더욱 도움이 된다. 굳이 스마트폰 기능을 완전 이해할 필요도 없다. ​ 모바일 뱅킹이나 몇 가지 쇼핑몰 이용할 때 그리고 지인과 카톡 주고 받을 때 빼고는 스마트폰은 예전 전화기와 진배 없다. 여기서 더 진화할 생각도 별로 없다. ​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아니면 불편을 즐기면서 살 요량으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으니까. 그렇더라도 이 책을 읽고 느낀 바가 많다. 세상과 더불어 살아 가는 이상 내 목소리를 누군가가 수집하고 있다. ..

네줄 冊 2022.08.16

입추 이후 - 김태완

입추 이후 - 김태완 아침이면 창문 밖 뒷산을 본다 언제 입이 피어나는지 어느 무렵에 푸른 잎들이 가득한지 새들은 어느 푸르름 속에서 지저귀는지 창문 밖 뒷산이 사는 시간을 늘 함께한다 입추가 지나자 한낮의 열기는 뜨거워도 저녁 밤공기가 어둠의 온도를 끌어내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산 나무들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마지막 힘을 모으며 뜨거워지는 중인가보다 발그레한 몇몇 잎사귀들이 노랗게 당황하는 걸 보자면 미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종족의 번식을 위해 자리 잡을 곳을 찾아왔는지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 자리 잡은 검버섯 누가 날린 종균인지 알 길 없으나 분명 저 뒷산에서 날아온 전갈 같은 당부로 어서 오너라 너 하나쯤 기꺼이 맞이해야지 어떤 나무로 피어날지 모르는 궁금한 종균을 요즘 토닥토닥 어루만지..

한줄 詩 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