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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의 화법 - 김지명

반달의 화법 - 김지명 맞바꾼 얼굴이 똑같은 반달은 서로를 잉여라고 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생각이 앙상한 이야기를 둘둘 말고 있었다 그날 이후 쉰세 마리 양들은 고목 앞 양편으로 나뉘어 목례를 했다 생각해 주는 말투로 알람으로 목소리 저장해 둘까? 바람과 이파리 부딪쳐 쌈꾼처럼 말을 건네지만 오래 같이 먹는 동네 공기에 서로는 젖고 서로는 젖지 않았다 나는 달을 감아 당신을 풀고 당신은 달을 풀어 나를 감는 상현은 머나먼 진술로 기밀을 담보했다 힘들어를 괜찮아로 발음하는 자간(字間)의 웃음 밤낮 인생은 그래 그래? 화법 하던 말을 끄고 잠든 마을 보며 볼 게 참 많다? 세상에서 빌린 말을 던지며 별똥별이 사라졌다 먹장구름이 반달을 뱉어 놓으면 편파는 하현에서 미끄러졌다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

한줄 詩 2021.09.15

천박한 사랑에 관하여 - 서윤후

천박한 사랑에 관하여 - 서윤후 아내는 내게 오라고 하였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그것이 침대 귀퉁이만 돌아도 갈 수 있는 일인지, 맨발로 유리 조각을 지나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 남았고 나는 숲에 불을 지른 것 같다 불이 끝나는 쪽으로 향하기 위하여 마주댄 것이 많아 타오르기가 쉬웠다 그 숲에서 아내는 물을 심어둔 것 같다 괘종시계 앞에서 불확실한 것과 손에 쥔 영수증 앞에서 불투명한 것이 우리를 각각 다른 곳으로 불러냈다 사랑을 멀리하라는 신의 계시였고 거역했지만 나와 아내는 거의 동시에 제 발로 사랑을 빠져나왔다 살려달라는 말을 둘째 아이처럼 낳고 아픈 사람에게는 가고 싶거든, 첫차든 막차든 빨리 가야만 한다는 이 심정을 해치우고 싶으니까, 그래도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야채죽의 당근을 ..

한줄 詩 2021.09.12

바라보기 - 진창윤

바라보기 - 진창윤 바스락거린다, 발을 떼어내지 못한 만큼 간절하다 질긴 저녁이 밀려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침대로 돌아가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밤 아닌 밤, 혼자 먹는 사료는 차다 늦은 밥을 먹으며, 오독오독 읽는 세상, 달랑 하나뿐인 접시 위에 놓인 발톱을 혀로 다듬는다, 아직 식지 않은 야생을 식힌다 접시가 맑아지면 차가운 방바닥의 끝에서 닳아버린 장판을 이빨로 핥는다 똑바 바라본 적 없는 내 눈동자를 일직선으로 바라보는 저 눈빛,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길들여진다 길게 바라보면 방문이 열린다 손대지 않고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집/ 달 칼라 현상소/ 여우난골 달 칼라 현상소 - 진창윤 해가 지면 남자는 달을 줍는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는 사진 박는 것이 직업이다 가로등 아래 골..

한줄 詩 2021.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