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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피던 자리 - 이문희

무화과 피던 자리 - 이문희 나무가 앓기 시작했다 남자는 야반도주를 하고 여자가 집을 나갔다 혼자 남은 무화과 이파리가 온 마당을 훑고 다녔다 우편함의 소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확성기 소리를 몰고 다니던 트럭이 매일 오는 장이 아니라고 생선 비린내 진을 치고 채소가 떨이로 목청 돋워도 유학 간 딸아이의 혼령이 스타인웨이를 타고 흐르고 검은 정장의 사내들 레드카드로 경고하는 집 열리지 않았던 파란 철문을 연 건 영구차였다 액자 밖의 사람들 몇은 담장에 기대 숨죽였고 정원은 말라갔다 막 맺기 시작한 무화가 열매가 장례행렬 속으로 떨어지던 오후 *시집/ 맨 뒤에 오는 사람/ 한국문연 칸나가 저녁 문턱을 넘는 풍경 - 이문희 칸나가 피었는데 우린 왜 쓸쓸하죠? 시골 간이역 근처 허름한 여인숙 마당엔..

한줄 詩 2021.09.22

추석을 배달하는 퀵서비스 맨 - 주창윤

추석을 배달하는 퀵서비스 맨 - 주창윤 배달이 밀리는 추석이다. 퀵서비스 맨이 갈비 세트와 특상(特上) 나주배 상자와 양주병을 가득 싣고 질주한다. 그의 어깨 너머 추석 보름달이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와 짓누른다. 특상 나주배 같은 달의 무게가 중심을 잃게 만들었나? 사거리에서 넘어진 오토바이 바퀴는 계속해서 헛돌고 쓰러진 퀵서비스 맨은 일어나지 못한다. 깨진 양주병에서 터진 보름달이 흘러내려 아스팔트를 적신다. 달은 그렇게 노랗게 흘러내리고 있다.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한국문연 그리운 은하수 목욕탕 - 주창윤 중계동 한화꿈에그린 아파트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걸어가면 빌라와 주택들 사이 은하수 목욕탕이 있다. 몇 달 만에 갔더니 사라졌다. 격포에 가서,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낸 ..

한줄 詩 2021.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