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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말은 - 김상출

그러니까 내 말은 - 김상출 눈물이 흘러나오는 길을 따라 그 안쪽 끝까정 들어가보믄 거기 분명 작은 읍내에 어울릴 법한 이쁜 간이우체국 하나 있을 거여 자네가 이래 몇 날 며칠 우는 거는 거기서 자꼬 슬픈 편지를 쓰고 있는 누가 반드시 있는 거여, 하믄 그러니께 내 말은 말이여 자네도 이렇게 자꼬 우지만 말고 거기로 편지를 쓰라 이거여 인자, 편지 고만 보내라고 울 만큼 울어서 눈물 다 말라부렀다고 또 머이냐 인자는 나도 좀 살아야 쓰것다고 아 언능 쓰란 말이여 *시집/ 다른 오늘/ 한티재 세월을 만나다 2 - 김상출 마루에 놓인 빈 박스는 서너 켜 더 올라가 있고 우편함에는 오랜만에 KT 요금고지서가 담겼다 늙은 개는 짖어보려고 두어 번 목을 추스리다 그만둔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이웃집 벽을 타고 오르..

한줄 詩 2021.09.29

오래 병에 정들다 보니 - 손진은

오래 병에 정들다 보니 - 손진은 오래 병에 정들다 보니 알겠다 병에도 위계가 있다는 걸 사막의 사자처럼 센 놈이 늑골언덕 깊숙이 사무치면 위아래서 빼꼼히 얼굴 내밀던 치들은 얼른 엎드린다는 걸 그러다 그 정든 병 유순해질 즈음이면 꼬리뼈에 핏줄에 마음의 살들에 숨어 살던 밀사들 얼른 고갤 들어 세력 다툰다는 걸 때로 다른 불우의 습격에 스러져 간 놈들, 내 영토는 버려진 마음들과 병이 암수가 되어 식구를 들이고 곁에 눕고 몸을 내줬다는 걸 지금도 엑스레이를 보면 내 몸의 왕국 점령하고 나부끼며 쇠락해 갔던, 때로 통보도 없이 왔다 간 환후의 연혁 아련히 남아 있다는 걸 그런 줄도 모르고 많은 미망과 헛것에 골몰했던 불모의 영지에 파란만장 술과 국밥, 울음과 다정 흘려보냈던 목구멍의 뻔뻔함! 오오래 병과..

한줄 詩 2021.09.28

봄볕이 짧다 - 김영진

봄볕이 짧다 - 김영진 ​ 눈동자 스민 황달 이제 얼굴 덮쳤다 예순넷까지 삶 언덕 가팔랐고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오기 전날까지 자활 공공근로로 쓰레기 치웠다 외래진료 받아도 출근 거른 적 없던 분 댁을 찾아가 이층 단칸방 문 두드렸다 홀로 조용히 떠나도록 한사코 가만 두라 했으나 방 안에 그냥 둘 수 없어 구급차 불렀다 병실 유리창으로 달려드는 봄볕, 기운 없는 손을 잡고 이마 머리카락 넘겨드린다 혼자 살아오신 삶, 유일하게 연락 닿는 남동생에게 알리지 말라 부탁하셨지만 그 말씀 들어드릴 수 없었다 기운 내세요 이겨 내셔야죠 물으니 아주머니 샛노랗게 웃으신다 병실 비춘 봄볕이 짧다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문학의전당 철근 인생 - 김영진 ​ 어릴 적 넝마 덮고 자란 그이 뼈마디는 철근마냥 굵고 ..

한줄 詩 2021.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