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이후 - 김태완
아침이면 창문 밖 뒷산을 본다
언제 입이 피어나는지
어느 무렵에 푸른 잎들이 가득한지
새들은 어느 푸르름 속에서 지저귀는지
창문 밖 뒷산이 사는 시간을 늘 함께한다
입추가 지나자
한낮의 열기는 뜨거워도 저녁 밤공기가 어둠의 온도를 끌어내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산 나무들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마지막 힘을 모으며 뜨거워지는 중인가보다
발그레한 몇몇 잎사귀들이 노랗게 당황하는 걸 보자면
미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종족의 번식을 위해 자리 잡을 곳을 찾아왔는지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 자리 잡은 검버섯
누가 날린 종균인지 알 길 없으나
분명 저 뒷산에서 날아온 전갈 같은 당부로
어서 오너라 너 하나쯤 기꺼이 맞이해야지
어떤 나무로 피어날지 모르는 궁금한 종균을
요즘 토닥토닥 어루만지는 중이다
창문 밖 뒷산이 언제부터인가
나를 살피고 있다
*시집/ 다음이 온다/ 이든북
중천 - 김태완
떴다 저 달 혼자 환한 둥근 달
천지사방 어둠 가득 먹은 먹먹한 달 떴다
중천은 어디쯤일까
일어날 수 없는 눈물의 무게에 서리서리 깊은 수심
그러니 이토록 바라볼 수밖에
바라보는 이곳이 여기 서 있는 바닥이
중천이라고 한 번 더 속아보고 당차게 일어선다면
설령 구석이면
또 어떠리
# 김태완 시인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신탄진에서 성장했다. 2000년 계간 <오늘의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마른 풀잎의 뚝심>, <왼쪽 사람>, <아무 눈물이나 틀어줘>, <다음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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