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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 이문재

고독사 - 이문재 눈이 오시려나 노인은 굽은 허리에 양손을 대고 한껏 날 선 능선을 바라본다 촘촘한 침엽수들이 잘 발라낸 생선 가시 같다 올려다보는 것이지만 뒤돌아보는 자세 햇살이 기우는 만큼 바람이 한칸 더 습해지고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안골에서도 골 끝 꼭대기 집 성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아궁이에 솔가지 가득 집어넣었는지 굴뚝 연기가 푸짐하다 안골 안쪽으로 솔가지 타는 냄새가 번져나간다 새끼 노루 쫓는 발걸음처럼 어둠이 잰걸음으로 골 안으로 들어선다 시린 눈 냄새가 타다닥 불 냄새를 와락 껴안는다 눈이 와서 사각사각 쌓이는 산골이 새하얗게 어두워진다 식은 밥 더운물에 말아 백김치 얹어 먹는 밤 대설주의보가 산맥의 동서로 길게 드리워진 밤 툇마루 바로 앞에서 길이 끊기는 밤 전신주가 띄엄띄엄 지워..

한줄 詩 2021.12.17

질문 빈곤 사회 - 강남순

묵직한 주제를 아주 명료하게 쓴 책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한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책이기도 하지만 나와 생각이 같은 저자와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더 큰 수확이다. 저자 강남순은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다. 2017년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겨레와 경향신문 열독자여서 경향신문에 언급되는 저자를 신뢰한다. 맹목적은 아니다. 강남순은 페미니즘과 종교에 관한 책을 여럿 썼다. 좋은 책을 많이 썼음에도 그의 책은 처음 읽는다. 어느 한 꼭지도 버릴 게 없을 만큼 영양가 있는 책이댜. 일독해서 얻을 게 많은 가성비 갑이랄까. *문제는 거짓과 증오에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진실과 사실을 거짓과 선동적 ..

네줄 冊 2021.12.17

슬픔이라는 내용을 가진 한때 - 강재남

슬픔이라는 내용을 가진 한때 - 강재남 단단하고 헐거운 감정이다 일시에 터지는 빛이라는 거다 태양이 쓴 문장을 읽는다 흰 그림자를 가만히 본다는 거다 누군가 그리워하기 좋을 때다 골목 너머로 시간이 진다는 거다 울음 닮은 침묵이 골목에 박제된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과 약속을 한다는 거다 빛이 빛으로 환원되는 순간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익숙해지는 것들에 마음을 내려놓고 단단하고 헐거운 감정을 말린다 그림자의 휴식처를 궁금해 말아야 한다는 거다 가장 낮고 초라한 곳이어도 그래 그럴 때도 있지 담담해진다는 거다 훌쩍 자란 계절의 뼈를 만진다 제 색으로 눈물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거다 수선화 라일락이 지고 봉숭아 씨앗이 여문다 사람이 사람으로 되돌아온다는 거다 *시집/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 달을쏘다 내가 ..

한줄 詩 202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