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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흉터 - 박지웅

꽃무늬 흉터 - 박지웅 서랍 안쪽에는 세상이 모르는 마을이 있다 속으로 밀어넣은 독백들이 저희끼리 모여 사는 오지 먼 쪽으로 가라앉은 적막에 새들도 얼씬하지 않는 바람마저 알아차리지 못한 그 외진 길에 편지 하나쯤 흘러들었을 것이다 서랍에 손을 넣으면 독백은 내 손을 잡고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종종 과일이 사라지는 것은 마을에서 손이 올라온 것 내가 먹은 그리움에는 왜 뼈가 나올까 누군가 파먹은 사람의 안쪽 가만히 문지르면 흉터는 열린다, 서랍처럼 가끔 그곳에서 곡소리가 난다 고백 하나가 숨을 거둔 것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 밖으로 발을 내민 그리움 뼈만 남은 글자들이 꽃상여에 실려 거처를 떠난다,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흉터는 눈뜨고 죽은 글자들 모든 꽃은 죽어서 눈뜬 글자들이다..

한줄 詩 2021.12.16

국도극장 - 전지희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영화다. 흥행 때문인지 갈수록 영화가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시대에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시적인 작품이다. 법대를 나왔으나 만년 고시생으로 세월을 보내던 기태(이동휘)는 고향인 벌교로 내려온다. 고향에 왔으나 모두가 서먹하기만 하다. 엄마는 오직 형만을 챙기고 오랜 만에 보는 친구들도 대면대면하다. 모두들 법대 나왔으니 성공할 줄 았았으나 땡전 한 푼 없이 내려온 기태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생계를 위해 읍내 극장에 매표원으로 취직을 한다. 이 극장 이름이 국도극장이다. 전지희 감독이 서울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을 이곳에 소환한 것이다. 지방 소읍의 극장으로 어울리지 않지만 기태는 그곳에서 간판을 그리는 오씨를 만난다. 오랜 만에 만난 동창생 영은(이상희)은 가수 지망생으로 억척스럽게..

세줄 映 2021.12.15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 우대식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 우대식 지옥을 유예하는 꿈을 꾸었다 원한다면 다음 생애를 이어가며 지옥을 영원히 유예할 수 있다는 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영원 너머 한 번은 그곳에 가야 한다는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지상의 소시민이 이렇듯 큰 생각을 하며 지옥 아래 마을을 떠돈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했다 추운 겨울 저녁 들기름 바른 김을 숯불에 굽던 옛집으로 돌아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고 싶다 오한 속에서 만나는 지옥의 야차(夜叉)와 일대의 싸움을 끝내고 오랜 잠을 자고 싶다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봉당에 켜진 알전구처럼 겨울날의 모든 저녁이 나를 기다렸다 *시집/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허무의 주루(酒樓) - 우대식 봉황성 주루 난간에 자리를 잡고 한여름을 보낸다 휘황한 밤의 색(色) 연암이 ..

한줄 詩 202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