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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의 편지 - 이윤설

어느 별의 편지 - 이윤설 우리는 사막의 절반을 지나왔으니 이 기후가 바뀌어도 이젠 좋겠다 우주는 먼 시간을 돌아 순환한다는데 화석이 부서져내리며 이제는 내 차례가 되어도 좋겠다 하늘이 준 눈물과 마른 땅이 고요히 입맞춤하는 계절이 나의 별에 시작되어도 좋겠다 그 사막의 폭풍이 지나가는 길에 나는 죽은 나뭇가지로 모래에 귀를 대고 누워 있었으나 누운 채로 오래도록 뜨거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최초의 나무가 시작되는 것을 당신이 숲이 되어 치마를 끌고 나와 그 치마폭에 나를 주워가줄 것을 알고 내 가지는 내 뿌리가 될 것을 알고 떠났던 잎들과 비와 향기로운 바람과 함께 당신이 오기 쉽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별은 양치기를 찾아 줄지어 떠나가는 하늘 아래 이 사막은 모래를 모두 쏟아버리고 맑은 유리잔 같은 ..

한줄 詩 2021.12.26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 - 최규환 시집

읽기 껄끄럽지 않으면서 스펀지에 물 스미듯 조금씩 가슴을 적셔오는 시집이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두 번째 시집이라는데 나는 처음 만난 시인이다. 1993년에 등단했으니 년식이 다소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시에서 오래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반면에 시집 곳곳에 촘촘하게 새겨진 나이테의 단단함이 제대로 전달된다. 년식은 낡은 것이 아니라 적당히 숙성한 것이다. 시인의 말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오랜 기간의 공백이었으나 멀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다. 예민하지 못했던 삶에게 값을 치르는 시간이었거나 스스로 익숙해지는 허물이었다.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도 여럿이나 시인의 말은 이렇게 쓸 일이다. 가족에게 고맙다거나 아내에게 바친다거나 하는 일기장 메모 같은 시인의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첫장에 실린 시인의 ..

네줄 冊 2021.12.23

편히 잠들려면 몸을 바꿔야만 해 - 김선우

편히 잠들려면 몸을 바꿔야만 해 - 김선우 -구름에게 배운 것 ​ 구름이면서 구름들이지 지금의 몸을 고집하지 않지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스미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지 ​ 두려움 없이 흩어지며 무너지고 사라지는 게 즐거운 놀이라는 듯 다시 나타날 땐 갓 태어난 듯 기뻐하지 그게 다지 곧 변할 테니까 ​ 편히 잠들기 위해 몸을 이동시키는 법을 나는 구름에게서 배웠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도 ​ 그러니 즐거이 변해가는 것 내가 가진 의지는 그게 다지 ​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3 - 김선우 -아무렇지 않은 아무의 반성들 현실의 식탁과 보이는 식탁과 보여지고 싶은 식탁 사이 품위 있게 드러내기의 기술 등급에 관하여 관음과 노출 사이 수많은 가면을 가진 신체에 관하여 곁에 있는 것..

한줄 詩 2021.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