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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이란 - 안태현

사람의 일이란 - 안태현 영덕에서 일출을 보고 오는 길에 삼중 추돌 사고를 당했다 당신은 새해 액땜한 셈 치자고 말했으나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때마침 오가는 일을 생각했다 먼 산에 흩날리는 눈보라 엉겁결에 얻어 입은 죽은 사람의 옷 한 벌 알몸에 걸치고 있었다 떠나본 일이 없는데 나를 여기에 둔 채 저곳으로 빠져나가 이마트 정육점에서 저녁에 먹을 고기를 고르고 겨울딸기를 먹으며 티브이 뉴스 속의 나를 구경한다면 밤의 심심함으로부터 후생이 시작될 것이다 고속도로에 낭자한 피 한 방울 없는데 타이어들이 슬금슬금 비켜 간다 나는 이미 피비린내다 나는 이미 끊어진 운명선을 쥐고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서 다정다감한 가장의 위엄을 잃었다 우리가 만난 건 몇십 년 헤어지는 건 찰나 나는 알 수 없는 냉정함 속으로 ..

한줄 詩 2022.01.09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 남궁석

많은 공부가 되는 좋은 책을 읽었다. 거의 2년을 꼬박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시달리다 보니 이런 공부도 하게 된다. 보이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지난 2년의 경험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저자 남궁석 선생은 농화학과 생화학을 전공했고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일반인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내용을 아주 조리있게 잘 설명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백 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과 1980년 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에이즈 바이러스, 그리고 2년 전에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셋 다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바이러스다. 이전부터 있었으나 몰랐던 것을 발견해 이..

네줄 冊 2022.01.08

함몰 - 윤의섭

함몰 - 윤의섭 달력에 쓰인 일정대로라면 여행을 다녀왔어야 하는데 나는 떠나본 적 없다 다녀왔어도 잊어버린 것인지 눈에 찍힌 발자국이 다시 눈에 쌓여 지워지고 꽃잎 떨궈낸 자리에 새로 꽃잎이 피어나고 봉분 갓 올린 무덤을 풀잎이 뒤덮고 퇴적의 역사는 쉽게 발굴되지 않는다 옷을 껴입지 그래요 추운데 정말 거기 갔을지도 몰라요 모자를 쓰든지 우산을 써 봐요 이런 날 외출하는데 그럼 나는 얼마나 오래 삭제되어 있었던 건가요 사람들이 여행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장례라고 말한다 대기권에선 늘 풍장 중인 달력에는 동그라미 표시한 날짜가 있다 여행이 끝나는 날이거나 떠날 날이거나 *시집/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현대시학사 절리 - 윤의섭 이 상태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내리는 눈과 눈 사이와 수직의 나무..

한줄 詩 2022.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