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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호좌회전 - 복효근

비보호좌회전 - 복효근 알아서 가라는 뜻일 게다 보호해주지 않을 테니 책임지지 않을 테니 니 인생 니가 알아서 살라는 뜻 겁박이거나 책임회피거나 시험의 기미가 농후하다 이 땅에서 왼쪽은 언제나 위험한 곳 숟가락을 왼손으로 잡아들면 대가리부터 쥐어박혔다 반대차선에서 멀리 한 대 다가오는데 망설이자니 뒤차가 경적을 울려댄다 이건 자율의 뜻이라고 직진신호에도 좌회전할 수 있으니 허용의 뜻이라고 왜 매사 못 믿고 주저하느냐 한말씀하시는 것 같다 자율과 허용이 갖고 있는 몇 개의 함정을 나는 안다 직진신호에서 좌회전하다가 골로 간 사람 더러 있다 노조에 가입했다가 나는 좌빨 소리도 들었고 짤릴 뻔도 하였으니 외야의 좌익수마저도 불안해 보인다 어쩌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뒤로 저 애매한 시그널 앞에서 겁 많은 이 ..

한줄 詩 2022.01.11

대화 - 김진규

대화 - 김진규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 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한 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이곳..

한줄 詩 2022.01.11

생명 가격표 -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책을 읽으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격표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려준다. 저자는 보건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득달같이 견인차가 먼저 달려온다. 그 속도는 경찰자보다 빠르다. 같은 직업이어도 얼마나 밥줄이 절박한가는 속도에 달렸다. 경찰이야 차분히 자기 할 일 하면 되지만 견인차는 경쟁자가 오기 전에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로 죽은 생명에도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것이다. 노숙자가 다쳤거나 죽었다면 병원은 환자 받기를 거부하거나 서로 떠넘긴다. 생명이 위급한 것은 같은데도 그 사람이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생사가 갈린다. 하물며 가격표가 매겨진 현실은 오죽할까. 자본주의..

네줄 冊 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