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자술서, 허리춤에서 꺼낸 한끗의 무게 - 송병호

마루안 2022. 1. 12. 22:33

 

 

자술서, 허리춤에서 꺼낸 한끗의 무게 - 송병호

 

 

목양실, 에어컨 실외기 커버 씌우다 얼핏

눈이 와도 올지 않을 빈집을 본다

성명 위 낙관처럼 각인된 故 질식사 사망 시간을 알 수 없는

끝내 깨지 못해 화석이 된 사란(死卵)

꼬리 긴 둥지 밟힐까 울음도 울 수 없었을 불법 입주

 

언제 비웠는지, 고요만 슳다

 

한 해 농사 놓친 힘듬이 느껴오는, 가까워서 너무 먼

빛과 어둠 사이 열대야 불면은 발등만 훑고 갔을 것이다

먹이사슬 윗선 고등의 무례, 피차 生의 平 같은데

여린 빗물로는 씻기지 않을 시월의 바람은 삭연하다

그때 나는 어디서 무엇으로 절반만 사랑하다가

꼭 마지막에서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침묵에 드는지

 

언젠가 헤쳐 갈 무풍의 돛이면 좋겠다

 

명년, 흙이 새살 돋는 잔설 몽진 다 털어내고 봄꽃 필 무렵 행여 꽃이 바람 시린 통증에 아파할지라도 유순한 구름 징검다리 삼아 어디 말고 여기 다시 왔으면 좋겠어 금의환향, 아닌 줄 알아 그래서 더 미안해 불법 말고 의젓하게 입주해 자식농사 잘 지었으면 해 비닐하우스 태풍을 견뎌내는 뚝심으로 불볕 열대야 제아무리 흔들어대도 매미가 제 숨통 다 뱉어낼 때까지 절대 틀지 않고 버텨볼게

 

악착같이

 

 

*시집/ 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상상인

 

 

 

 

 

 

나이테 - 송병호

 

 

구름둥지를 튼 적송 그루터기 앉아 있다

 

굴레를 돌아 지긋이 지우는 소리가 난다

시차를 헤아리는 길처

 

나이를 먹는 것, 짐 하나 내려놓는 일

개운치 않아 꾸다 만 꿈처럼 뒤숭숭한데

회리바람꽃 구름협곡을 밟는다

 

거친 기계소리에 화석이 된 나선의 방향키

 

스치는 바람에도 길이 있고

소리도 색깔이 있는데

내 안에 있는 것, 그 기막힘

 

갓길에 생을 기댄 낙엽처럼

귀 떨어진 보도블록 실종의 파편처럼

덧없을 솔로몬의 전도서 같은

 

해 떨어지기 전에 방향키를 잡아야겠다

 

깃털 꺾인 장끼 산허리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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