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엄마의 술집, 그 집의 술국 - 우혁

마루안 2022. 1. 16. 19:25

 

 

엄마의 술집, 그 집의 술국 - 우혁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다

밤이 깊고 입김이 거셀수록

겨울은 엄마 집에만 머무는 거 같았다

술 없이 밤을 견딜 수 없는 족속들

오로지 시키는 건 술국뿐

가끔 식은 밥을 말아대며

씩씩대는 김 씨는

국물을 삼킬 때만 사람이 됐다

식은 국물을 몇 번이고 다시 데우고

그때마다 내장이며 순대며 은근슬쩍 더 들어가는

덤덤한 덤은 엄마도 모르고 김 씨도 몰랐다

그러니 나도 모르고

꾸벅 조는 겨울이 더 슴슴한 맛을 내는 거였다

하나 아니면 둘

빨리 비우지도 못하는 잔이

자꾸 밤그림자를 게워내는 것 같았다

어느 유적지에서 오래 유물이 되고 싶었던

입맛이 몇 번 사람이 되곤 하는 밤이었다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불온한 몸 - 우혁

 

 

파도에서 네가 걸어 나왔다

몇 번의 화장(火葬)이 있었고

그때마다 여지없이 폭발음이 새 나왔다

수습된 이름들은 모두 지독히도 썼는데

발이 젖었다

그날 내 가슴 위에

너의 잇자국이 났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제 지울 수 없겠구나

한 발 더 가까워지겠구나

내 이를 검게 물들인 것도

그때부터였지

-넌 발 모양이 이미 영장류가 아니야

그림자만 가득한 바닷가에서 너는 속삭였다

파도는 아랫목으로 퇴화 중이었다

수 세기 동안 눈에 띄는 변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따금

'모든 흔적은 사라진다'라고 적는다

끝없이 윗목으로 수렴하는

너의 기관(器官)들

내겐 걸을 때마다 허공을 깨무는

버릇만 목숨처럼 남았다

 

 

 

 

*시인의 말

 

언 강가에 흐릿해지는

풍경은 어디서 한번은 본 것 같아

그저 비누면 족하지

어제를 씻는 데는

 

흐린 얼굴은 유령처럼 지나가고

언 강이 나를 몰고 온다

 

단단한 수면을 온통 나로 채운다

 

나를 머금은 거울

한 모금 그림자

어디로 뱉을까

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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