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비판 받을 권리 - 박용하

마루안 2022. 8. 31. 21:51

 

 

비판 받을 권리 - 박용하

 

 

나부터 선을 긋고 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는

아직도 안 되는 듣기

 

일가친척부터 위정자까지

주어 없는 고깃덩어리랑

묻지 마 투표기계까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종교는 말해 뭐하겠는가

유리 국경은 말해 뭐하겠는가

 

우리는 파편이다

그것도 끼리끼리 파편이다

 

이젠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비판하는 자들이

비판받는 걸 더 못 견뎌 한다는 것이다

 

용기 내 들어야 할 쓴소리가 왔을 때

나는 누구였고 우리는 무엇이었던가

 

나부터 총을 들고 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요원한 듣기의 힘

 

비판할 자유가 있듯이 바판받을 자유도 있다

작가는 비판받을 권리도 있다

언어보다 총알이 편리한 이유다

 

비판하는 힘보다 비판을 받아들이는 힘이 더 큰 저녁이다

그런 저녁은 희귀하다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달아실

 

 

 

 

 

 

그리하여 어느덧 우리는 - 박용하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상에 없을 것이며

지금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상에 있을 수 없으므로

태어나는 순간이 죽음에 입장하는 순간이고

매순간이 사라지는 삶의 순간이고 환원 불가 현재의 순간이므로

어느 순간 막다른 존재가 엄연한 부재를 알아본 저녁

엄연한 부재는 도리어 막다른 존재가 되어

우리들 생의 어두운 얼굴을 심장부터 끌어올릴 것입니다

우리들 가물거리는 이름을 입술까지 들어 올릴 것입니다

당신의 오래 남은 목소리가 빛이 되어 날아갑니다

당신의 못다 한 숨소리가 시간이 되어 날아옵니다

그리하여 어느덧 우리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섬광처럼 우리들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며

마침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문득 세상에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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