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냉장고 - 윤석정 비 그치고 안개가 이불처럼 펼쳐진 새벽 젖은 나무들이 게워낸 꽃봉오리는 이역만리에서 달려온 저번 생들의 발바닥 이번 생을 살고자 저번 생이 딱 한 번 꽃신 신고 북쪽으로 행군할 채비를 했고 때마침 비는 나무의 발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겨우 목숨만 챙겨 왔다 내 마음에서 사는 것들은 안개보다 더 희뿌옇고 죽음에 얼룩진 발바닥을 가졌다 발바닥을 디뎌야 일어날 수 있듯 나는 죽어야 살아나는 것들을 생각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갓던 개구리들이 개울가로 기어 나와 알을 낳고 밤낮으로 울었다 우는 소리를 엿듣다가 방문을 닫으면 냉장고가 방구석에 웅크린 채 쉴 새 없이 울었다 마음을 열어젖히고 다 내어 준 서러운 목숨들 나는 내 마음에서 죽은 것들을 생각했다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