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 김재진 사랑하는 사람에게 - 김재진 당신 만나러 가느라 서둘렀던 적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도착하지 않은 당신을 기다린 적 있습니다. 멀리서 온 편지 뜯듯 손가락 떨리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보여 여기예요, 여기예요, 손짓한 적 있습니다. 차츰 어둠이 어깨 위로.. 한줄 詩 2016.01.29
운명 - 천양희 운명 - 천양희 눈물로 된 몸을 가진 새가 있다 주둥이가 없어 먹이를 물 수 없는 새가 있다 발이 없어 지상에 내려오면 죽는 새가 있다 온몸이 가시로 된 나무가 있다 그늘에서만 사는 나무가 있다 햇빛을 받으면 죽는 나무가 있다 운명이란 누가 쓴 잔인한 자서전일까 *시집, 너무 많은 입.. 한줄 詩 2016.01.23
1년 - 오은 1년 - 오은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되었습니다 2월엔 여태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추위 탓으로 돌립니다 어느 날엔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었습니다 3월엔 괜히 가방이 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늘리고 싶.. 한줄 詩 2016.01.21
지워버리기도 전에 - 박수서 지워버리기도 전에 - 박수서 거품을 물고 모래덤불에 떨어지는 유성을 이 악물고 모르는 척 도리질을 했다 나 지금 흔들리느냐고, 뻘밭을 향해 송송 뚫리는 가슴을 잘라 버리려고 상처 난 집게발을 옴지락거려보지만 도대체 무슨 운명인지 가슴 가까이만 이르면 찌르르 감전되어 버린다 .. 한줄 詩 2016.01.19
불온한 사랑 - 김승강 불온한 사랑 - 김승강 너와 내가 짐승으로 사랑한다면 겨울날 살얼음 진 빈 논에서 태어날 때 그대로 알몸으로 무심하게 마른 짚을 씹고 있는 암소와 수소처럼 알몸으로 있어도 누구의 눈에 띄겠느냐 누가 눈길 한번 주겠느냐 그러나 너와 내가 사람으로 사랑한다면 온 세상 눈이 일제히 .. 한줄 詩 2016.01.19
노숙자를 위한 기도 - 김종철 노숙자를 위한 기도 - 김종철 -못의 사회학 4 초식동물은 뜯는 풀이 달라 서로 다투지 않는다 도시를 떠도는 노숙자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다 좋아한다 얼룩말이 억세고 질긴 풀만 찾듯이 버려진 라면 박스에 엎드린 서울의 하루 높은 빌딩 창들이 뾰족뾰족 눈 뜬 밤 서로 어깨 맞댄 .. 한줄 詩 2016.01.16
빈 들판 - 이제하 빈 들판 – 이제하 빈 들판으로 바람이 가네 아아 빈 하늘로 별이 지네 아아 빈 가슴으로 우는 사람 거기 서서 소리 없이 나를 부르네 어쩌나 어쩌나 귀를 기울여도 마음 속의 님 떠날 줄 모르네 빈 바다로 달이 뜨네 아아 빈 산 위로 밤이 내리네 아아 빈 가슴으로 우는 사람 거기 서서 소.. 두줄 音 2016.01.15
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 이성복 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 이성복 진해에서 훈련병 시절 외곽 초소 옆 개울물에 흰 밥알이 떠내려왔다 나는 엠원 소총을 내려놓고 옹달샘 물을 마시는 노루처럼 밥알을 건져 먹었다 물론 배도 고팠겠지만 밥알을 건져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 한줄 詩 2016.01.14
회복기 - 이창숙 회복기 - 이창숙 어느 날 뱀처럼 스르르 저쪽 세상으로 떠날지도 몰라 누워 바닥이 좋다는 건, 그토록 바닥이 눈물나게 좋다는 건, 병에 대한 두려움에 눈물짓지 않는다는 거야 눈물이 나온다는 건, 살아가는 걸 걱정한다는 거야 거울 속의 흰 머리카락을 낯가림 없이 세상에 드러내며 내.. 한줄 詩 2016.01.13
약속 없는 길에 서다 - 허순위 약속 없는 길에 서다 - 허순위 그곳은 떨어져서 손톱의 반달이 되었다 그곳을 밀어올리자, 개미들은 분주했지만 무엇이나 만져보면서 둥글거나 뽀족한 모서리를 만드는 것이 살아가는 날들의 한계였다 돌아가지 않겠다, 돌아갈 수 없는 그곳. 멀어지며 선명한 새들의 그림자가 되시라. .. 한줄 詩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