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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소멸 - 박민영

헌책방을 순례할 때가 있다. 딱히 어떤 책을 사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옛집에 들르듯 가는 것이다. 헌책방에 가면 무조건 사고 보는 시절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 두고 참지 못하는 것처럼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질 못했다. 집에 쌓여가는 책들, 읽으려고 샀지만 절반 이상은 못 읽은 책이다. 혹자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도 있지만 꽂아 두기 위해 산다고,, 목차만 훑어봐도 읽은 것으로 친다고,, 나도 그때 절반쯤은 수긍했다. 지금은 아니다. 몇 해 전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고 주변을 정리했다. 큰 방 사면을 가득 채운 책을 가장 먼저 정리했다. 담배 끊기 힘든 것처럼 책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실천 하고 나니 집안의 다른 것까지 하나씩 버리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지를 알았다. 버리기 전에 책장을 쭉 ..

네줄 冊 2017.12.14

눈물 처방 - 김윤환

눈물 처방 - 김윤환 안압이 오른 후에 의사 왈 신경 쓰지 마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뭐 그리 신경 쓸 일도 무리할 일도 없는 나에게 참 과분한 처방이다 얼핏 들으면 신경 좀 쓰고 살아라, 힘 좀 쓰고 살아라 양심에 독촉하는 듯 들려 약 처방에 인공눈물약이 들어있네 하루 대 여섯 번 눈물을 넣으라네 얼마나 울지 못했으면 얼마나 눈물이 말랐으면 눈물약이라니 참, 눈물이 난다 *시집, 이름의 풍장, 도서출판 애지 녹내장(綠內障) - 김윤환 지천명(知天命) 쉰 살 문턱으로 찾아 온 손님 그 이름 가만히 짚어보니 내면에 기록됨을 막는다 하여 녹내장이라 돌아보면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 그 좁은 시야로 넓은 세상 꿈꾸며 살았지 점안약 넣을 때마다 놓친 풍경 새록새록 선명하네 두려움보다 그리움이 앞서는 고마운 손님 # ..

한줄 詩 2017.12.13

한 번쯤은 나를 잊기도 하면서 - 윤향기

한 번쯤은 나를 잊기도 하면서 - 윤향기 한 번쯤은 하늘의 별을 헤며 걷다가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부르며 걷다가 숲 속에 빠져 길을 잃고 싶다. 불러도 불러도 사람의 목청이 닿지 않는 먼 곳 섬에 갇히어 누군가를 소원처럼 기다리고 싶다. 내 이름도 잊어버리고 웃음도 낯설어지면 쏴 쏴 밀려오는 파도에 깎이는 가슴 앙상하게 남은 마음만 들고 노을 든 벼랑에 서 있고 싶다. *시집, 내 영혼 속에 네가 지은 집, 문학예술 어떤 예감 - 윤향기 그대가 떠난 것은 오지 않기 위하여 간 것이라지만 다시 오기 위하여 간 것처럼 보입니다. 함께 입은 세월을 벗어 들고 떠난 가방 속엔 그리움만 꽉 채우고 그대가 말없이 떠난 것은 오늘도 돌아오기 위한 시작처럼 보입니다. # 윤향기 시인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1991년 문학..

한줄 詩 2017.12.13

내 가을의 고물자전거 - 이강산

내 가을의 고물자전거 - 이강산 여행의 쉼표를 찍듯 잠시 다녀가는 부곡하와이 9월 19일 오후.... 이쯤에서 슬그머니 가을이 오곤 했었지 시간의 길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낙엽을 밟는다, 처음 밟아본다 그래, 그러고 보면 내 가을은 종종 아주 오래 전 가을의 낌새를 눈치 챈 나이로부터 지금까지 오늘처럼 '낙엽을 처음 밟아본다'는 독백에서 시작되었다 내 가을은 또 발바닥에 밟히는 낙엽의 분량만큼 두툼해졌다가 얇아졌다 말하자면 나의 가을은 독백과 발바닥으로부터 마흔 번쯤 오고 간 셈이다 낯선 거리에서 불현듯 마주친 가을 때문에 길 잃은 사람처럼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이대로 가을이 깊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불암감으로 낙엽 몇 잎은 피해간다 장수풍뎅이는 아닐 텐데, 길바닥에 말라붙은 곤충 한 마리도 비껴간다 물웅덩..

한줄 詩 2017.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