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살아 있다는 것의 한 움큼 - 성선경

마루안 2018. 10. 5. 21:55



살아 있다는 것의 한 움큼 - 성선경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늘
누군가 쥐여 주는 한 움큼의 덤으로
숨 쉬는 것


나는 태어나자마자
장손의 이름을 덤으로 받았다


숨 쉬고 두 발로 걷고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하고


내 살아가며 받는 덤 중에 제일 큰 것
아들과 딸을 덤으로 받았다


지난봄 화단에서는 새싹과
꽃 한 다발을 또 덤으로 받은 적도 있다
거기에 우리의 숨이 붙어 있다


늙고 병들고 꿈도 잃고 사랑도 잃고 숨도 가쁠 때


삶의 끝자락, 이제 더 이상 덤이 없어질 그즈음
우리는 무덤으로 간다, 그러니
살아 있다는 것의
저 주름진 한 움큼 얼마나 무거운가.



*시집,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파란출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외톨이 늑대는 - 성선경



따뜻한 밥을 먹을 때도 혼자
가을의 긴 숲 속 길을 걸을 때도 혼자
사랑의 시를 쓸 때도 혼자
간혹 혼자라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지만
혼자라서 더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
벚꽃으로 화창한 여좌천을 걸을 때도 혼자
흑백다방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보다 돌아 나올 때도 혼자
파전에 막걸리를 마실 때도 혼자
간혹 혼자라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지만
혼자라서 더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
작은 간이 우체국을 지나며
답장을 기다리지 않는 엽서를 쓸 때도 혼자
국밥을 먹을까? 국수를 먹을까?
사소한 고민을 할 때도 혼자
술잔을 건네줄 상대가 없다는 생각에
간혹 혼자라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
원래 늑대는 외톨이가 아니라지만
혼자라서 더 두려울 때도 있지만
그나마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





# 제목만 읽어도 시 한 편이 그려지는 시다. 제목만 차용해도 단편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는 시나리오 소재가 충분하겠다. 짙은 서정성이 느껴지는 제목부터 술술 읽히는 싯구들이 막힌 가슴을 씻겨준다. 힐링이 되는 시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