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위하여 - 황학주
입 다물어지지 않는 올리브 숲을 두 바다째 걸었다
하긴 어디 가서 올리브나무만 있다고 삶이 되랴
널 사랑해서 어두워져 가는 세상이 건너지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날아가면서 싼 새똥처럼 빗방울이 머리에 떨어질 때
잠깐 돌아서니 내 뒤가 정말 슬펐다
이제 옛날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이 오고 말았다
올려다보니 성좌 쪽에서 탁구공이 따라오다 멎고
맑은 유성들은 올리브나무 사이를 굴러 검은 열매를 달고 있다
며칠 동안 파도에 뛰어든 별들의 냄새가 다 밀려 올라오는 해안
여기쯤에서 길을 막고 나를 놓을 때가 있어야 하지
썰물이 붉은 뼈 다 보이는 절벽을 내다 놓듯
첫사랑을 가장 뒤에 만났으니, 사랑이
죽고 없는 것도 천연스레 살릴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은 물인 돌들이 깔려 있고
열린 돌인 물들이 한층 출렁거린다
그래 사랑은 한두 개 허리를 가지고 산 게 아니었다
거의는 죽어서도 몸을 주러 밀려오길 원하니
사랑만이 꽃인 가을이다
물가 절벽에 위태로이 대궁을 키운 내게 네가 있다고
누가 믿지도 않겠지만
꽃, 위하여
*시집, 루시, 솔출판사
정류장 - 황학주
한 남자가 신문을 보고 있다
버스가 올 때마다
신문지가 접히며 드러나는 미간
파인 뿌리처럼 드러난
둥근 무릎과 복숭아뼈를
나무 그늘이 깍지 껴 안고 있다
달강 정류장에 앉아
내 눈썹을 밟으며 오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이 온다 - 정일남 (0) | 2018.10.12 |
---|---|
처음 부는 바람의 부족 - 김병심 (0) | 2018.10.12 |
이정표를 놓치다 - 안성덕 (0) | 2018.10.09 |
오늘의 눈물을 어디에 어떻게 조금씩 사용해야 하는가 - 서규정 (0) | 2018.10.08 |
화엄맨발 - 김수우 (0) | 2018.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