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景

지붕에서 내려 온 가을

마루안 2018. 10. 9. 19:51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집을 만났다.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대문을 열면 잠시 들어오라고 할 것 같은 집이다. 내 어머니가 살고 있다면 불러 보고 싶은 집이다. 점점 지붕이 있는 집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김장보다 더 큰 일이 지붕을 올리는 일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볏집으로 엮은 이엉으로 지붕을 덮는 일은 여자가 할 수 없다. 서른 아홉에 홀로 된 어머니는 이후 모든 일을 당신이 하지 못하면 남의 손을 빌려야 했다.

 

평소 논일 밭일 등 품앗이로 품을 팔아 그 댓가로 우리집 지붕 공사를 동네 남자들이 했다. 한 번 하면 몇 년 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삭은 이엉을 걷어 내고 새로 올려야 했다. 입에 겨우 풀칠 하는 정도의 가난함을 벗기 위해 어머니는 날마다 품을 팔아야 했다.

 

어머니는 해마다 돌아오는 지붕 올리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태풍이라도 오면 지붕 날아갈까 밤새 걱정을 하던 어머니였다. 그래서였을까. 가끔 넋두리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누구네 집은 슬레트 지붕을 했다. 아무개 집은 양철 지붕을 올렸다. 누구네는 허물어진 돌담 대신 브로크로 담을 쌓았다.

 

어머니는 양철 지붕과 브로크 담을 가진 집이 소원이었다. 대문은 사치였다. 시멘트를 구할 돈이 없어 진흙을 개어 깨진 부뚜막을 바르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소처럼 평생 일만 하다가 살 만하니 세상을 떠났다. 내 가슴에 얹힌 응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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