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암(住智庵)은 있다 - 한영수 은비녀가 없다 백일 비손이 없다 밥 좀 주쇼, 문고리를 흔드는 빨치산의 낮은 목소리가 없다 윗도리가 벗겨진 시신이 없다 속바지 바느질 자국으로 알아본 뭉개진 얼굴이 없다 산딸기의 붉은 빛처럼 주지암은 숨어있나 소풍을 간 곳 초등학교 때 아버지도 양은도시락 허리에 차고 숨차 올랐다는 바래봉 깎아지른 바위 아래 그 무서운 사천왕도 없이 스님마저 어디 가고 바위부처 혼자 골짜기 마을을 품어준 주지암이 없다 표지석의 화살표를 따라 갔는데 삐비 한 줌처럼 봄 소풍 전날 밤의 뒤척임처럼 뒤척이다 엿들은 한숨처럼 희미해졌나 다가선 그만큼 멀어져갔나 흔들리는 촛불이 없다 떨어지는 촛농이 없다 왼손과 오른손을 모은 가슴이 없다 *시집, 꽃의 좌표, 현대시학 꽁초 - 한영수 오늘 낮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