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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늘 속 검은 잠 - 조유리 시집

어릴 때 유난히 굿을 자주 하는 친구네가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집과는 달리 친구네는 그런대로 잘 사는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우리집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 집에서는 가끔 굿이 열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닐곱 살 무렵일까. 친구집 안방에서 무당이 징을 치면서 구슬프게 주문을 외던 기억이 있다. 그 징소리를 들으며 나는 친구와 골목에서 구술치기를 했다. 그 때 우리는 이 놀이를 다마치기라 불렀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늘 할머니나 어머니가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 매고 누워 있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누워 있고 어느 날은 어머니가 누워 있엇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신병이라고 수군댔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친구 어머니가 무당이 될 팔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네줄 冊 2019.01.15

백 년 향기 - 육근상

백 년 향기 - 육근상 목에 호스를 심은 식물이 왔네 금방 떨어질 것 같은 한 꽃송이 달고 뽀글거리며 침대째 내게 왔네 숨 한 번 쉴 적마다 식물은 가는 허리로 발목으로 동그란 눈으로 갸릉갸릉, 흰 나비 부르고 상심한 남자는 굵은 손으로 눈물 찍어내며 꽃자리 지키느라 안간힘이었네 겨우내 떨어져 살며 꽃 피우고 새 화분으로 옮겨갈 막다른 허공 잡다 댓바람에 목 꺾인 몸부림은 얼마나 힘든 외로움이었나 시든 꽃에도 향기는 있네 백 년 식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향기네 *시집, 만개, 솔출판사 煞* - 육근상 스무날이었던가 버러지소리로 들어와 방문 걸어 잠근 날 가을비 내렸던가 한 소절씩 끊어 말리며 두근거리는 심장 가라앉힐 때 차가운 바람은 볼온한 나를 어디로 인도하였던가 餘恨이라는 말 있었던가 살아있으니..

한줄 詩 2019.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