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벌목 - 김상철

벌목 - 김상철 꽃봉오리 톡톡 차서 땅에 떨구는 아이의 무심한 발재간처럼 애증의 무게도 없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같은 나이테를 자른다 새 길이 난다고 사람들은 덕담을 피워냈지만 한 번 불고 길게 멈춰선 바람처럼 노인은 초록 묻은 가지 끝에 서성거렸다 타관객지 떠돌던 스무 여남은 적 맨 먼저 그려지던 풍광이었다 그늘의 후덕함을 들은 건 종종거릴 무렵 할아버지 수염 밑에서였다 나무 섰던 자리가 휑하니 허공으로 뚫릴 때 먼저 간 이들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절며 끌며 부뚜막 오가던 할마시 가고 재 넘어 살던 누, 날 보자 하더니 가고 고삐 끌러 제 목에 걸고 혹부리도 가고 해산달에 숨넘어간 몰래 엿보던 순례도 가고 아버지 어머니 고모 농약 마신 외사춘 동생 하나씩 하나씩 모두 다 가고 이 세상으로 든든히 묶어주..

한줄 詩 2018.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