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천년 뒤의 노을 - 서규정

천년 뒤의 노을 - 서규정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우리에게 내민 것은 먼데서 떠내려 오던 지푸라기 한 올이겠지 절대 놓치지 말자 강물도 역사도 지푸라기를 잡고 따라가거든 모래와 자갈 넘쳐나는 사실들로 강이 부석거릴 땐 깊은 수심을 산 물고기가 갈매기로 날아오르는 순간이 있다 물론 뻥이다 다만 이토록 붉은 속눈썹들 늘 뻥만 치던, 노을이라는 大뻥에 속아 과연 무엇을 살다 떠났느냐 우리가 우리에게 물어야할 고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시집, , 작가세계 사람, 들 그리고 꿈, 틀 - 서규정 워낙 희한한 인간들이 많이 나타나 부처와 예수를 가르친다는 그 말, 맞는 것 같다 신념을 내세워 놓고 왜 스스로 신념의 노예가 되어 살까 그 크고 넓다는 정의는, 개인용도일 뿐이다 바위 속에서 작은 망치로 자장자장 꺼낸 ..

한줄 詩 2018.12.09

중고품 늦가을 - 홍신선

중고품 늦가을 - 홍신선 이 시절 스캔들 하나 없는 나날이란 맹탕이 아니냐고 일탈 없이 굴러온 생이란 떨그럭대는 찌그러진 깡통 아니냐고 때 아닌 늦가을 웃비 가고 난 이제도 자폭인 듯 길옆 배수로 물 고인 진창으로 뛰어내리는 치들이 있다. 짓이겨지고 흙탕물 뒤집어써도 툭, 툭 무작정 뛰어내리는 낯꽃 꺼진 중고의 녹슨 낙엽들 그래도 외따로 내가 이 한철을 옆에 끼고 질탕하게 노는 것은 저 11월 하늘가에 자우룩이 뜬, 뭇 나무에서 쓰나미 덮친 듯 큰 사태나 쏟아지는 일탈과 스캔들 때문이다. *시집, 삶의 옹이, 문학선社 버지니아 울프는 세월을 읽는다 - 홍신선 늦여름 저녁의 하늘 끝 구름들 붉은 도랑물 속에서 이웃집 또래들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잡으려 했던, 아무리 양 손아귀에 힘껏 움켜쥐어도 씨알 굵은..

한줄 詩 2018.12.06

어떤 오후가 끝날 무렵 - 강재남

어떤 오후가 끝날 무렵 - 강재남 유독 무덤가에서 누구에게 무례하다 누구에게 친절하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늙어야하고 태양은 죽지 않아야 한다 오후에 나는 늙었고 태양은 죽지 않았으므로 신경안정제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물푸레나무가 한 뼘 자란다 물푸레나무는 철학적이어서 어떤 물음과 대답이 공존한다 불규칙한 무늬를 입은 상냥한 그 여자, 입술이 붉다 입술에서 입술로 환승하는 나는 요망스런 계집, 아무도 죽지 않은 무덤에서 편지를 쓴다 마른 꽃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죽은 이름을 불러야할 이유는 없다 상냥한 그 여자와 여자들 입술이 부풀고 부푼 입술에서 뒷담화가 핀다 아름다운 생장력을 가진 치명적인 꽃, 꽃잎을 뜯어 혀에 심는다 오후에 나는 늙었고 태양은 죽지 않았으므로 햇살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붉은 꽃술에 혓..

한줄 詩 2018.12.06